[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지난 10년 동안 사모펀드 또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대기업 지분은 늘었지만, 오너 지분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규제 완화로 사모펀드의 지분이 확대된 만큼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2011년 대비 2021년 자산 100대 기업 주요 주주 지분 변동 조사'에 따르면 자산 100대 기업에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요 주주들의 지분 중 사모펀드 보유 지분이 2011년 평균 14.4%에서 2021년 21.6%로 7.2%포인트 늘어 증가 폭이 가장 컸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 지분도 7.4%에서 8.7%로 1.3%포인트 증가했지만, 오너 지분은 43.2%에서 42.8%로 오히려 0.4%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기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 자산운용회사, 투자목적회사(SPC) 등이 최대주주인 6개사는 최대주주 지분이 2011년 43.6%에서 2021년 60.0%로 16.4%포인트 늘었다. 이러한 금융 자본의 기업 경영 참여가 늘어난 것은 정부가 기업 M&A나 자금 조달을 활성화한다는 명목으로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5년 10월 △PEF 투자 대상 회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허용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 현황 공시 의무 면제 △PEF가 투자한 기업에 대한 5년 내 처분 의무를 원칙 7년, 추가 3년(최대 10년)으로 확대 등 사모펀드와 관련한 규제를 완화했다.
국민연금 또는 정부가 최대주주인 기업도 최대주주 보유 지분이 각각 1.4%포인트, 0.6%포인트 등으로 소폭 증가했다. 반대로 최대주주가 오너인 기업만 최대주주 지분이 2011년 43.2%에서 2021년 42.8%로 0.4%포인트 줄었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모습. (사진=뉴시스)
사모펀드는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금융 계열사를 매각할 때 이를 인수하거나 기업이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빠졌을 때 긴급 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역할을 하지만, 교보생명과 어피니티컨소시엄과의 분쟁 사례처럼 초기에는 재무적 투자자로서 경영자에게 우호적이다가 이후 주주 간 계약을 빌미로 경영권을 위협하기도 한다.
전경련은 "정부가 토종 자본을 육성하고, 해외 PEF들과의 역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자본시장법상 '10% 보유 의무 룰'을 지난해 폐지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업 오너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세력들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고 있으나, 이를 방어할 수단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특히 상법상 '3% 룰' 때문에 주요 주주 간 경쟁에서 최대주주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020년 12월 개정된 상법에는 '감사위원을 선임 또는 해임할 때는 상장회사의 의결권 없는 주식을 제외한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3을 초과하는 수의 주식을 가진 주주는 그 초과하는 주식에 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최대주주는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을 선임 또는 해임할 때 그의 특수관계인이 소유하는 주식을 합산해야 한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정부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가며 국민연금이나 사모펀드의 기업 경영 참여를 유도하고 있으나,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는 기업 의견은 외면하고 있다"며 "경영권 공격 세력과 방어 세력이 경영권 시장에서 대등하게 경쟁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말 기준 자산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정부·지주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한 기업, 공기업, 2011년 이후 설립된 회사 등은 제외됐다. 각사의 2011년과 2021년 사업보고서에 공시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 5% 이상 보유 주요 주주 지분을 자료로 활용했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