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심 개혁①)칼 빼든 김명수 대법원장, 상고심사제 도입 성공할까

상고사건 폭증, 대법관 1명당 3500개 담당 “면밀한 심리 어려워”
대법원 상고제 개선 TF, 상고사건 거르는 상고심사제 도입 검토
법조계 “국민들, 대법원 재판 원해…심사제는 법률 수요 역주행”

입력 : 2022-07-04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상고사건 숫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지만, 대법관 숫자는 그대로다. 대법관 1명이 맡는 사건 수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쌓이는 업무 속에 면밀한 심리는 어려워진다. 대법원은 법령 해석의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고 하급심 판결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만큼, 상고심 사건은 충실한 심리가 이뤄져야 한다. 이에 대법원은 상고사건 숫자를 줄이는 방향으로 상고심 제도의 개선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다. 국민이 대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최근에는 상고사건 숫자 감소에 초점을 맞춰온 상고심 제도 개선의 패러다임을 바꿔, 대법관 증원을 대폭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다.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할 뿐 아니라 대법원의 심리 수준도 제고할 수 있다는 제언이다. <편집자 주>
 
임기 15개월 정도를 앞둔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법원 숙원사업이던 상고심 제도 개선에 나섰다. 김 대법원장이 의장을 맡고 있는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대법관 증원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상고 사건 수를 줄이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만큼, 상고심사제 도입을 중심으로 개선안이 도출될 전망이다.
 
4일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행정자문회의에서 제시한 상고제도 개선안을 중심으로, 개선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언제까지 연구를 마무리하겠다는 기한은 없다”며 “연구 자료를 꾸준히 축적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상고제도 개선 입법 추진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다. 팀 규모는 10명안팎이다. 행정처의 재판연구관과 일선 고법·지법 판사 등으로 꾸려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5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행정자문회의 제20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TF팀은 상고제도 개선에 관한 입법을 추진하기 위해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상고심사제 도입과 대법관 증원 방안을 다루며 관련 내용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자문회의는 상고제 개편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는데 두 가지 방안을 결합한 개선안을 제시했다.
 
이중 대법관 증원에 관해서, 자문회의는 증원 규모는 최소한일 필요가 있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대법원 재판의 중심이 돼야 하는 만큼, 대법관을 대폭 늘리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자문회의가 유력하게 제시한 규모는 4명 안팎이다. 
 
결국 자문회의 제시안의 방점은 상고심사제에 찍혀있다. 상고심사제는 상고사건 중 대법원의 본안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만 심사를 통해 선별하는 제도다. 상고사건은 폭증하는데 13명에 불과한 대법관만으로는 면밀한 심리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상고사건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하급심 판결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최고법원인 만큼 꼼꼼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심 본안사건은 4만6231건을 기록했다.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년에 대법관 1명당 3500건 이상을 처리하는 셈이다.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1명당 2000건 이상 3000건 미만이었지만, 2015년부 3000건을 넘긴 이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대법원에서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변호사는 “대법관 1명당 담당하고 있는 사건이 너무 많다”며 “업무가 너무 많아 대법관이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문회의가 제시한 상고심사제는 국민이 대법원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짙다. 법적인 판단으로 분쟁의 결론을 내려는 국민의 법률서비스 수요가 많아지고 있는데,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상고심사제는 국민 정서에 역주행한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고심사제를 도입한다면 심리할 사건을 어떤 기준으로 걸러낼 것인지, 그 기준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된다면 재판청구권 침해 여지가 적을 수 있으나, 기준이 타당하지 않을 경우에는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민들은 그간 대법원 재판을 받아오면서 최종법원의 판결을 받고 싶어하는 기대가 생겼다”며 “상고심사제와 같은 제도로 상고사건을 걸러내는 것은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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