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헌재 싸움에 국민 권리구제만 지연"

'한정위헌 결정' 논란…양 기관, 25년만에 재격돌
"법 해석은 법원 권한" vs "한정위헌 수용해야"
법조계도 '한정위헌 기속력' 인정두고 의견 갈려
"두 사법기관, 상반 의견 고수·유지…재판만 반복"

입력 : 2022-07-0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응열 기자] 헌법재판소가 1997년 소득세법 관련 대법원 확정판결을 취소한 이래 25년여만에 두 사법기관이 다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헌재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에 관해 대법원이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다. 7일 법조·법학계에서는 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지난달 30일 헌재는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을 헌법소원에서 제외하는 헌재법 68조1항이 위헌이라고 재판관 9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결정했다. 헌재는 또 대학교수 A씨가 한정위헌을 근거로 낸 재심청구를 기각한 대법원 판결도 취소했다. 
 
지난 2003년 제주도 심의위원으로 위촉된 A씨는 골프장의 재해영향평가를 맡았다. A씨는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는데, 지자체 위촉위원까지 공무원으로 보고 뇌물죄로 처벌한 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A씨는 법원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대법원은 한정위헌 결정이 재심사유가 될 수 없다며 기각했다. A씨는 재심 청구를 기각한 대법원 판결과, 재판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한 헌재법이 위헌이라고 재차 헌법소원을 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재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한정위헌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법원 재판은 인정할 수 없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헌재는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은 법원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며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법원 재판은 그 자체로 헌재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헌법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한정위헌도 법원 판단에 기속력을 갖는다는 입장이다. 한정위헌이란 법원이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선언하는 결정이다. 헌재가 법원의 법률 해석에 관해 방향을 제시하는 셈이다.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법령의 해석·적용 권한은 법원에 있기 때문에, 법률 조항에 관한 특정 내용의 해석·적용만 위헌으로 보는 한정위헌은 위헌결정의 효력을 가질 수 없고 기속력도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사진=대법원)
 
대법원은 “다른 국가기관이 법률의 해석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국가권력 분립구조의 기본원리와 사법권 독립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법령 해석·적용에 관한 법원 판단을 헌재가 통제할 경우 헌재는 실질적으로 국회와 법원 모두를 통제하게 되고 정부 법집행도 통제하는 결과가 된다”며 “국회-정부-법원-헌재에 독자적 헌법상 권한을 부여하고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도록 해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헌법 제정권자의 근본적 결단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조·법학계에서는 한정위헌 결정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에도 헌재는 한정위헌 결정을 했고 이에 따라 법 해석·운용이 이뤄져 왔다”며 “한정위헌 결정도 법원 재판에 기속력을 갖는다는 헌재 판단을 법원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법원은 자신들이 결점이 없다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도 꼬집었다. 법관의 법률 해석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법률 근간인 헌법 합치 여부를 판단하는 헌재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3권분립상 법률 해석 권한은 법원에 있는 게 맞고 헌재는 헌법에 관한 판단만 하는 기관”이라며 “법원이 판례 등을 통해 법률을 해석할 텐데, 이러한 법원 권한을 헌재가 침해하는 게 맞느냐”고 지적했다. 
 
두 사법기관이 충돌하면서 국민의 권리구제만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법관 출신 변호사는 “국가기관이 다른 판단을 하면서 사건 당사자는 제대로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재판을 되풀이해 시간과 비용을 계속 소비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응열 기자 sealjjan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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