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문무일 전 검찰총장에게 '국가 수사권력의 통제와 균형'에 대해 물었다. 30년간의 검사 생활 끝에 '검·경 수사권 조정'이라는, 검찰로서는 매우 엄혹한 계절에 수장을 맡았던 그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이어지는 수사권력 개혁 전반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미 직을 이미 떠난 신분'이라는 문 전 총장은 여러 거북한 질문을 노련하게 받아 넘겼다. 때때로 선문답이 오갔으나 본인이 답해야 할 질문에서는 피하지 않았다. 다만, 매우 절제된 언어와 태도로 핵심만을 도려내 답했다. 1시간30분여에 걸친 문 전 총장과의 인터뷰를 ‘수사권력에 대한 통제’와 ‘한국 로펌의 방향’ 두 갈래로 나눠 소개한다.(편집자주)
문무일 전 검찰총장(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있는 세종 본사에서 <뉴스토마토>와 안터뷰하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소송의 주체입니다. 위법한 지시를 따르면 안 됩니다. 그건 직무유기예요."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있는 법무법인(유) 세종 본사에서 진행된 인터뷰 중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한 말이다. 문 전 총장은 현재 세종의 대표 변호사다.
강학상의 일반적 법리를 강조한 말일 수도 있겠으나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이후 지금의 '검수완박' 사태까지, 검찰과 관련한 문제 전반에 맞닿아 있는 지적으로 들렸다. ‘소송의 주체’라는 말이 특히 그랬다. 문 전 총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소송주체로서 소송법이나 소송제도에 대한 자기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검수완박(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 일명 검찰개혁법)'이 낳은 경찰국 신설로, 현직 총경들이 단체회의를 열자 윤석열 대통령은 "중대한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12·12 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고까지 했다.
불똥은 '검사회의'로 튀었다.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앞두고 검찰에서는 평검사부터 고검장까지 수십여차례 단체회의를 열고 반대 성명과 자체 개혁안을 내놨다. 야당은 '총경회의와 검사회의가 다를게 뭐냐'며 항변했다. 이 논란은 파장이 크게 확산돼 경찰 내부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검찰과 경찰을 차별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검-경. 소송상 지위 달라"
그러나 문 전 총장은 각자의 입장을 '소송의 주체'인지 여부로 정리했다. 형사소송법상 '소송의 3주체'는 공소제기를 한 검사와 방어를 하는 피고인, 제3자로서 판단을 하는 법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들이 형사소송과 관련된 법 개정에 대해 단체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문 전 총장은 검사와 검사 사이에서도 이런 원리는 똑같이 적용된다고 했다. 각각 소송주체로서 서로가 직무상 독립돼 있기 때문이다. 문 전 총장은 같은 맥락에서 “검사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수사를 윗사람이 찍어눌러 못하게 하는 경우 검사가 굽히지 않아도 징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소송 주체로서의 검사’는 원래 '검찰'이라고 했다. 문 총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대륙법계인 우리나라는 일본을 거쳐 근대법을 도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형사소송법상 '검찰'을 일본이 '검사'로 잘못 번역한 탓이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틀린 것"
이 때문에 문 총장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틀린 것이고, '오역의 후유증'이라고 했다. 제헌국회가 1949년 제정한 검찰청법 11조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은 무려 55년이나 지속되다가 참여정부 때인 2004년 1월20일에서야 없어졌다. 대신 7조에서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로 완화됐다.
역대 정부에서 검찰개혁에 반발해 임기 도중 사표를 던지고 나간 검찰총장들의 예도 비슷한 것이냐고 묻자 문 전 총장은 부인하지 않았다. 문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 초대 검찰총장으로서 검찰개혁에 반발한 것도 같은 이치로 이해됐다.
2017년 7월6일.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역대 검찰총장 중 가장 개혁적 인물
문 전 총장은 역대 검찰총장 중 가장 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노태우 정권의 6공화국 시절인 1988년 벌어진 ‘제2차 사법파동’ 당시, 문 전 총장은 사법연수원에서 18기 동기 4명과 연수원생들의 성명을 주도했다. 제2차 사법파동은 소장판사들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사법연수생들까지 들고 일어난 것은 사법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사법연수생들의 단체 성명은 문 전 총장과 문병호 전 국민의당 의원, 최원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같은 당 정성호 의원, 그리고 이재명 의원이 함께 준비했다. 이 여파로 정기승 전 대법원 판사의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역시 헌정사상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정 전 대법원 판사는 유신시대와 5공화국 시절 사법부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시국사범 재판에 개입한 인물이었다.
1999년 현직검사 28명이 연루된 ‘대전법조비리사건’이 발생하자 문 전 총장은 평검사로서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다. 평검사였던 문 전 총장은 인천지검에서, 동기인 강찬우 검사(전 수원지검장, 법무법인 ‘평산’ 대표)는 서울지검에서 김 총장의 퇴진을 주도했다. 이 일로 문 전 총장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문무일 신임 검찰총장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정부 초대 검찰총장
문재인 정부가 문 전 총장을 초대 총장으로 임명한 것도 그의 이런 개혁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순탄치가 않았다.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두고 문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에 반발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평가와 그 이유를 묻자 문 전 총장은 직접적인 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 역사의 기본은 신체와 재산의 자유 보장이고, 이것은 수사와 재판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성패가 달려 있어요. 이 중 수사에 대한 견제는 ‘체크 앤 밸런스’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것을 실패한 것이죠.”
문 전 총장은 현직 시절 ‘수사권 조정’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수사는 경찰이 전부 맡고, 검찰은 경찰의 수사결과를 종합해 기소만 하도록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방향(수사-기소 분리)은 잘못 됐다고 봤다. 검찰이 가진 수사범위 중 경찰이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그 권한을 넘기되 그 견제와 통제를 검찰이 해야 한다는 게 문 전 총장의 주장이다. 즉 수사의 착수는 경찰이, 종료는 검찰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재판도 재판의 진행과 선고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정부 검찰개혁 방향, 상상 밖"
문 전 총장은 검찰총장 취임 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방향을 예견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며 “상상 밖에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검찰총장으로서 가진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의견을 청와대와 충분히 공유했는지 묻자 “얘기 할 수 있는 데는 다 해봤다”고 했다.
그러나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은 2019년 4월29일 패스트트랙 사안으로 지정됐다. 문 전 총장이 범죄인 인도조약과 형사사법공조조약 협력 논의를 위해 해외출장을 떠난 사이였다. 그는 언론보도를 통해 이 소식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에콰도르 방문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패스트트랙 법안은 이듬해 1월13일 국회를 통과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2019년 6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역사관 앞에서 과거사 관련 입장발표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당시를 회상하면서 문 전 총장은 이런 말도 했다. 2019년 7월의 일이다.
“제가 총장 시절 대한변협에서 주최했던 토론회가 있었어요. '검·경수사권 조정'이 주제였는데, 플로어(방청석)에서 ‘경찰 주장대로라면 중국 공안식 아니냐’고 묻자 경찰 측 패널이 ‘중국 공안식 맞다. 그러나 중국 공안은 잘못된 제도가 아니라 현재 중국이 운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참석 검사로부터 보고받았습니다. 이걸 어느 기자도 안 썼어요. 서운하고 실망스러웠습니다.”
문 전 총장은 수사기관이 권한을 남용하면 그 권한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부분에 대한 견제를 했어야 했는데 검찰이 잘못했다면서 (수사권을 경찰에게)다 줘버렸다. 결국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권력에 대한 '체크 앤 밸런스'가 안 된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 잘못했다는 반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경찰권력에 대한 견제와 통제 문제로 흘렀다. 현안인 ‘경찰국’ 신설 등 여러 질문을 던졌다. 문 전 총장은 다시 정면으로 답하는 대신 이런 이야기를 했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민주주의의(기본은)는 견제와 균형입니다. 수사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견제장치가 필요합니다. 해당 권력이 스스로 권력을 통제하도록 하는 거예요. 제가 총장 때 수사심위원회와 검찰시민위원회를 법률화 시켜서 미국의 기소대배심 보다 더 강력한 통제장치를 두려 했는데 결국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검수완박법 시행) 되버리면 필요가 없는 것이죠.”
문 전 총장이 말 한 수사심의위원회와 검찰시민위원회는 그가 검찰총장 시절 내놓은 검찰의 자체 개혁안이었다. 수사심의위원회는 검찰이 수사와 기소 전 과정에서 각 분야이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심의를 받는 제도다. 검찰시민위원회는 검사의 기소·불기소의 타당성 여부를 국민이 심사하도록 한 제도이다. 두 제도 모두 대검 예규로 마련됐다. 이 제도들이 행정규칙 보다 상위 규범인 법으로 안착되면 검찰의 권한을 획기적으로 견제 내지 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문 전 총장의 생각이다.
문 전 총장의 이야기는 경찰에도 시민들이 직접 수사권을 견제 내지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둬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 후 검찰의 통제권이 없어졌으니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찰국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로도 이해됐다.
"자치경찰제 확립으로 권력 분산해야"
문 전 총장은 "경찰에 강력한 통제장치를 둬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자치경찰제를 조속히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본연의 기능인 치안을 강화함으로써 국가경찰의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3권분립을 구현한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예를 들며 “권력자가 선인이라는 생각만 하고 권력을 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여러번 경고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이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디타워에 있는 세종 본사에서 <뉴스토마토>와 안터뷰하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문 전 총장에게 정부가 바뀔 때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는 “정권에 대한 수사는 현 정부든 전 정부든 가려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다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사라는 것이 증거가 나와야 하는데 ‘살아있는 권력’의 비위 증거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사협조 거부로 증거가 가려져 있다고도 지적했다. 국민이 가지는 집권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한 몫을 차지한다고 했다. 그러나 ‘죽은 권력’, 즉 끝난 정부는 어느 시점에서든 범죄의 증거들이 드러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인지든 고소·고발에 의해서든 말이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