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불사조' 송골매

현대적 연출로 재창조…38년 만에 공연 '열망'
"대세 바뀐다면 재활동 가능성 있을 듯"

입력 : 2022-09-13 오후 8:13:1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유구한 세월이 그저 전설로만 박제되지 않을 때, 우리가 딛고 선 우주는 한뼘 더 커지기 마련이다.
 
신디사이저가 쏟아내는 장중한 멜로디, 세기를 건너왔지만 울퉁불퉁 힙한 기타 리프들,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 위 꿈틀대는 투박한 한국어 가사...
 
영상 속 새의 날개짓은 단순히 뒤안길로 사라지는 빛 바랜 역사가 아니었다. 열혈 청춘들의 뜨거운 열망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추억을 먹기만 하지 않는다.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불사(不死)' 단계, 언제가 끝인지 알 순 없어도 오늘 하루 다시 한 번 높이 비상할 뿐이다. 
 
1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KSPO 돔(구 올림픽체조경기장), 무대 양쪽 송골매 상징인 대형 날개에 흰색 조명이 등사기처럼 켜지자, 세월의 먼지가 소멸하더니, 시계가 거꾸로 돌았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 눈이/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어쩌다 마주친 그대(2집, 1982))'
 
송골매의 배철수와 구창모가 주축이 돼 38년 만에 연 '열망' 콘서트. 사진=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이날 원년멤버 배철수(70, 기타·보컬)와 2집부터 전성기 중추였던 구창모(69, 보컬)를 중심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 ‘열망(熱望)’이 첫 발을 뗐다. 송골매라는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은 38년 만. 전국 주요 도시(광주, 대구, 부산 등)와 내년 3월 미국 투어(LA, 뉴욕, 애틀랜타)의 출사표이기도 한 이번 무대에서, 두 사람은 왜 송골매가 산울림과 함께 한국식 그룹사운드의 원형이며, 역사였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저녁 7시, 입장곡으로 딥 퍼플 'Smoke on the Water'가 끝난 뒤 암전, 곧이어 3개의 대형 LED 화면에 '그때 그 시절' 감성 영상이 묻어나왔다. 플레이어에 걸려버린 카세트 테이프를 낑낑대며 푸는 전파사 직원의 연기에 여기저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브라운관 TV 디자인의 배경 화면과 복고풍 의상..., 그리고 벤츠 자동차가 구식 디자인으로 바뀌고 미지 세계를 향해 뛰어들 때, 돔을 가득 채운 9500여 관객들이 함성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송골매를 사랑하는 여러분, 다 모이신 겁니까. 다음 곡은 '모여라'입니다."(배철수)
 
찢어진 청바지, 가죽 재킷 차림의 배철수와 유려한 미성의 구창모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 듯 했다. 1980년대 활동 당시 기성 가요계와 방송사의 경직된 문화를 타파한 록 밴드이자, 자유로운 청년문화의 표상, 그대로 무대에 섰다. 이날 두 멤버는 고령의 나이에도 2시간 가량 총 26곡을 소화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2집, 1982)'와 '모여라'(9집, 1990)' 같은 대표 히트곡들로 시작해 역사를 되짚어 갔다. 
 
송골매의 배철수와 구창모가 주축이 돼 38년 만에 연 '열망' 콘서트. 사진=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송골매 원형' 활주로·블랙테트라 시절 비화까지
 
송골매는 1979년 한국항공대학교 캠퍼스 밴드 활주로 출신 배철수를 중심으로 결성됐다. 이후 1982년 홍익대 캠퍼스 밴드 블랙테트라 멤버 구창모와 김정선을 영입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구창모 영입 이후 발표한 2집 타이틀곡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구창모의 유려한 미성 고음을 앞세운 특유의 송골매 인장의 록 음악으로 ‘모두 다 사랑하리(2집, 1982)’, ‘처음 본 순간(3집, 1983)’ 등을 잇따라 히트시켰다. 
 
배철수가 구창모를 처음 만난 것은 1978년 TBC 해변가요제 2차 예심 때다. 곡 ‘구름과 나를’을 부르는 구창모를 보면서 “’꽃미남인데다 저렇게나 깨끗하게 부르는 친구가 있구나’ 생각했다”고. 1집이 생각보다 히트를 치지 못하자, “송골매를 바꿔 봐야겠다”는 생각에 당시 블랙테트라를 관두고 오색약수터 앞 암자에 있던 구창모에게로 향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활주로와 블랙테트라 시절의 곡들까지 라이브로 구현하고 그때 풀지 못했던 비화를 만담으로 엮어내는 시도로, 송골매의 원형을 돌아보게 했다.
 
1978년 두 사람이 첫 인연을 맺게 된 곡 '구름과 나는'에 앞서 구창모는 "TBC 사옥 5층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장발의 배철수"를 기억에서 건져냈다. "일주일 이상 머리를 안 감은 거 같더라고요. '쟤는 뭐야' 하면서 지나갔어요."(구창모) "왜 기간을 줄여요. 한 달 동안 안 감은 건데요. 그때 머리 안 길렀으면 대한민국 남성이 아니었죠."(배철수) "근데 예심이 치뤄지는 곳에서 배철수 씨가 드럼을 치면서 노래를 정말 멋있게 부르더군요."(구창모) "누가 미성으로 노래하는데,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랐거든요. 첫 눈에 반했던 것이죠."(배철수) 
 
송골매의 배철수와 구창모가 주축이 돼 38년 만에 연 '열망' 콘서트. 사진=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구창모 솔로 전향, 배철수 감전 사고, 후기 송골매 
 
1984년 구창모는 송골매 4집 녹음 이후 밴드를 탈퇴하고 솔로 가수로 전향하면서 '희나리(1985)', '방황(1986)' 등의 히트곡으로 가요계 정상 자리에 올랐다. 송골매는 배철수를 중심으로 팀을 재정비하고 ‘하늘나라 우리님(5집, 1985)’ ‘새가 되어 날으리(7집, 1987)’, ‘고추잠자리(8집, 1988)’ 등을 발표했다. 1990년 히트곡 ‘모여라’가 담긴 정규 9집을 끝으로 긴 휴식기에 들어갔다. 
 
2010년 원년 멤버인 이봉환·김정선을 주축으로 밴드를 재결성한 10집(‘송골매 2010’)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배철수, 구창모가 참여하지 않은 탓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후 배철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라디오 DJ로 33년 간 활동했고, 구창모는 20년 간 해외 개인사업 활동 등을 이어왔다.
 
이날 공연 중반 이후부터는 두 사람의 솔로곡들과 송골매 시절의 숨겨진 곡들을 조명하는 순서들로 꾸몄다. 서로 해묵은 감정들도 농담으로 풀어냈다. "(4집 당시) 음반을 냈으면 책임을 져야할 것 아닙니까. 상도의를 어기고 그냥 나가셨어요."(배철수) "이렇게 말은 해도 당시 탈퇴 전 멤버들과 많은 상의를 했습니다. 배철수씨가 많이 응원해줬습니다."(구창모)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9집, 1990)'은 송골매 시절 음반 녹음 후 이번 무대에서 라이브로 처음 선보였다. 영국의 여류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가 발표한 같은 제목의 시(詩)를 읽다 영감을 받아 쓴 곡. "제가 그 당시 영미 고전 시집 같은 걸 많이 읽었는데요. 이 책은 이상하게 슬프더라고요.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라서 붙여 만든 곡입니다."(배철수) 
 
1983년 '젊음의 행진' 출연 당시 '그대는 나는'을 부르다 감전 사고를 당한 기억을 떠올리며 배철수가 "오늘 이 곡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싶다"고 너스레를 떨자 관중들의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마이크가 삐뚜루 돼 있었는데 똑바로 잡으려 했다가 그만. 그날이 3월 19일 토요일이에요. 34년째 진행하는 배철수 음악캠프가 90년 3월19일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인연이 무척 깊은 날이 됐네요."(배철수)
 
송골매의 배철수와 구창모가 주축이 돼 38년 만에 연 '열망' 콘서트. 사진=드림메이커 엔터테인먼트
 
현대적 연출로 재창조…'한국적 록 사운드'
 
이번 공연은 그 시절 그때 그대로를 보여주고 들려주자는 기획 의도에 방점이 찍혔다.
 
사운드적으로 현대적인 여타의 편곡을 거치지 않고 원곡 그대로를 무대에 올렸다. 3기부터 함께 한 베이스 이태윤(송골매 7~9집 베이스) 공연 총괄 음악 감독을 비롯해 2대의 기타(전달현·이성열)와 3대의 키보드(박만희·안기호·최태완), 드럼(장혁), 코러스(이서종·김지숙) 등이 꽉 채운 무대는 옛 음악을 생생한 라이브 사운드로 풍성하게 느껴지게 했다.
 
이태윤 총괄 음악 감독은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음악 감독을 떠나서, 1987년부터 1991년부터 멤버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리허설 때 방송을 찍듯 실전과 동일하게 계속해서 연습했기 때문에 공연 날 결과가 좋았다고 생각한다"며 "다수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오리지널 편곡과 사운드, 1978년도부터 1980년대 초중후반 사운드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데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음악다방 DJ와 턴테이블, 활주로 LP, 유선 전화기, 브라운관TV, 80년대 디스코 댄스, 롤러장... 향수에 젖게 하는 제작 영상들이 거대한 LED 화면을 수놓을 때마다 "맞아 그때 그랬었지"를 연발하는 관객들의 열기로 돔 내 공기는 후끈했다.
 
다만 현대적인 연출 미학을 놓치지 않는 이번 공연은 과거에만 박제되지 않았다. 
 
공연 후반, 구성진 배철수의 목소리에, 한국적인 록 사운드가 뿜어지는 '하늘나라 우리님(5집, 1985)'과 '탈춤(4집, 1984)', '세상만사(1집, 1979)'로 이어지는 순서 때는 두 사람을 태운 무빙 스테이지가 1층 객석 끝까지 이동하고 다시 중간에 정박했다 돌아가는 연출이 특기할 만 했다. 돔의 객석 끝에 형형색색 LED 연출과 중간 미러볼을 활용한 무대에서는 2013년 가왕 조용필이 낸 19집 음반 '헬로'의 음반 재킷처럼 영롱한 시각 효과가 음악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탈바꿈시켰다.
 
'새가 되어 날으리(7집, 1987)'에서 모두 일어난 청중들이 제창을 하자, 영상 속 3D 송골매는 비상하며 숲과 도시를 굽어봤다. 지난한 세상을 이겨온 자기 또래 불사의 열망을 간직한 관객들과 함께. 이후 앙코르 곡 '모두 다 사랑하리(2집, 1982)'까지 마친 뒤, 대형화면에 잡힌 붉어진 두 사람의 눈시울에서 시대를 초월한 열망을 읽을 수 있었다.
 
록 매거진 파라노이드의 송명하 편집장은 "이번 38년 만의 송골매 공연은 한국 록 역사에도 기념비가 될 것"이라며 "끊임없이 활동해 온 부활이나 갑작스레 활동이 중단된 넥스트와는 또 다른 측면으로 의미를 새긴 것 같다. 공연 영상 제작 같은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송 편집장은 "'이 빠진 동그라미' 같은 몇몇 곡에서는 배철수 특유의 창이나 타령 스타일 더 잘 살아난 것 같다"며 "아레나 규모 해외 록 밴드 공연에서 볼 법한 돌출 무대와 공연장 뒤편까지 배치시킨 LED 같이 연출적인 면에서는 현대적인 느낌을 준 점도 높게 평가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공연에는 10~20대 자녀들의 손을 잡고 온 50~60대 관객들이 많이 보였다. 서태지를 좋아한다는 20대 후반 청년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60대의 박기영(가명)씨는 "나는 10대 시절을 송골매와 20대 시절을 산울림과 함께 한 세대"라며 "신중현과 엽전들, 키보이스, 김수철과 작은 거인들을 들은 이전 세대와 부활, 시나위, 백두산이 나온 이후 세대 사이 그룹사운드 전성기였던 내 청춘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고 공연 뒤 감격에 젖은 모습을 보였다.
 
잠정적으로 아름다운 마지막 비행일까. 아직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분명한 점은 부활했다는 것이다.
 
이태윤 감독은 "시대를 풍미한 팝록 밴드 송골매에 다시 불을 지핀 기분"이라며 "배철수 형님은 이번 공연까지만 하고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지만, 대세가 바뀐다면 송골매의 재활동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도 70세 이후 록 밴드가 나와야 하지 않나 하는 개인적 바람도 있다. '송골매 4기' 활동이 가능했으면 한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송골매 38년 만의 '열망' 콘서트를 앞두고 지난 7월 기자 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배철수(왼쪽)과 구창모. 사진=뉴시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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