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는 없었고 숫자놀음만 있었다. 화재공장이 발생한 화일약품 이야기다.
경기 화성시 향남읍에 위치한 화일약품 공장에 화마가 덮친 날은 지난달 30일이다. 소방은 화재가 발생한 지 30분이 지나기 전 관할 소방서 인력 전체가 출동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소방은 화재 이후 아세톤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미상의 원인에 의해 폭발이 일어나 화재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화재가 발생한 공장은 참혹한 모습으로 변했다. 처참한 화재 장소가 보여주듯 인명 피해도 있었다. 이 사고로 1명이 사망했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중 4명은 두부외상 등 중상, 나머지 13명은 연기를 들이마시는 등 경상을 입었다. 사상자 모두 화일약품 직원이다.
화일약품은 경찰의 현장 합동감식이 예정된 지난 4일 오전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애도와 사과가 있어야 할 자리에 숫자를 넣었다.
보도자료는 '화일약품, 화재사고에 "매출에 큰 영향 없을 듯…수습, 재발방지에 최선"'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부제에 해당하는 부분은 '인근 공장 적극 활용… 241억 화재보험도 가입돼'라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장문의 보도자료에서 화일약품이 강조한 점은 매출 피해 최소화, 화재가 발생한 공장의 매출 비중, 241억원의 화재보험 가입금 따위였다. 심지어 화재보험에 가입됐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지점에는 '다행'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화재가 발생한 공장의 빈자리는 인근 공장을 활용해 메우겠다는 계획도 있다. 화재로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숫자는 보도자료 맨 마지막에 스치듯 나올 뿐이었다.
화일약품이 사고 이후 애도와 사과의 뜻을 전하긴 했다. 화일약품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과문 형식의 글이다. 화일약품은 이 글에서 고인에게 애도를 표하고 유가족에게 사죄했다. 또 부상을 입은 직원들에게도 사과의 뜻을 전했다.
화일약품이 홈페이지에서 애도와 사과를 했다고 매출 피해 최소화를 운운하는 보도자료가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닿을 글이었으니 더욱 조심해야 했다. 차라리 홈페이지에 내건 사과문을 반복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체가 매출과 이익을 따지는 일은 당연하다.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해 주주와 상생해야 하는 상장사라면 특히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온갖 어려운 용어가 나오고 연구개발의 성공 확률이 지극히 낮지만 제약기업도 이윤 창출이 중요한 것은 마찬가지다. 다른 산업군에 속한 기업들처럼 제약사도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거나 상품을 들여와 판매하고, 여기서 이익을 거둬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제약산업이 다른 산업과 다른 점은 지향점이다. 제약기업의 경영활동은 이문을 좇되 인간 생명 자체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화일약품이 국민 보건을 증진하고 생명을 연장해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제약산업계의 일원이라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 고인과 부상을 입은 직원에 대한 마음은 매출 피해 최소화를 운운하는 숫자놀음으로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