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윤석열 대통령, '김문수 카드' 다시 생각해야

입력 : 2022-10-14 오전 6:00:00
아니나 다를까. 대번에 사달이 났다.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작심한 듯 국감장을 발칵 뒤집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가리켜 '확실히 김일성 주의자'라고 하더니 국감 위원으로 나온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는 '김일성 수령에게 충성하는 측면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가 국감장에서 쫓겨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김 위원장이 국가기관 피감자로서 국감장에 출석한 것은 경기지사 퇴임 후 8년여 만이다. 이번 국감이 '컴백 무대' 내지 '재기전'인 셈인데, '김문수가 누군지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각오였다면 대성공이었다. 이제 김 위원장이 누구인지는 국민 누구나 알게 됐으니 말이다. 
 
김 위원장의 논리는 '신영복은 김일성 주의자'라는 신념이 전제로, '김일성 주의자인 신영복을 존경하는 문재인은 김일성 주의자'라는 귀결이다. 참 교묘하다. 그런데 전제부터 틀렸다. 고 신영복 선생의 통일혁명당 연루 경위와 배경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 진실을 두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그가 '김일성 주의자'인지는 여전히 역사적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이 '신영복은 김일성 주의자'라는 주장의 논거로 인용하는 사법부 판결은 중앙정보부가 활개치던 1968년, 박정희 정권 때 얘기다. 사형 선고를 내린 곳도 육군고등군법회의였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의 신념은 '박정희 정권'에 고착돼 있는 것일까. 
 
이를 차치하더라도 문 전 대통령이 '신영복의 사상을 가장 존경한다'고 말한 사실은 없다. 신영복 선생은 사상가이기도 했지만 인품과 학덕이 풍부한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이자 작가였다. 2018년 2월9일 문 전 대통령의 <평화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 환영사>의 정확한 워딩은 이렇다.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은 겨울철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것을 정겹게 일컬어 '원시적 우정'이라 했습니다. 오늘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우리들의 우정이 강원도의 추위 속에서 더욱 굳건해 지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자신의 말을 주워담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1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로 해명 기회를 얻었지만 과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노빠꾸·답정너'의 자세로 본인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죄다 물어뜯을 듯 한 그의 기세는 인터뷰를 듣는 내내 거북할 정도였다. 
 
이쯤 되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김 위원장의 생각과 발언은, 상식 선의 신념이라기 보다 '아스팔트 보수'의 실력자로서 터득한 '존재감 과시 전략'으로 밖에 안 보인다. 따지고 보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아예 브레이크를 떼어버린 '말 폭주'로 자기편 기분 맞추기에만 몰두하는 위정자들이 김 위원장 뿐이겠느냐마는. 
 
개인의 사상과 신념, 그리고 표현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는 귀중한 가치다. 그러나 특정 목적을 위해 스스로 왜곡·조작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와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형성한 사상과 신념이라면 더 이상 헌법의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에서 보호되어야 할 표현의 자유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흉기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인터뷰 말미에 경제사회노동위원장으로서 밝힌 포부는 그래서 미덥지가 않다. 그는 "가장 조직되지 아니한 86%의 영세하고 어려움에 처한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섬기겠다"고 말했다.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실은 김 위원장 폭주에 대해 "스스로 설명할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했다. 그러나 무얼 더 설명하란 말인가. 김 위원장 스스로도 방송 인터뷰에서 똑같은 취지의 질문을 받고 '여태 뭘 들었느냐'는 식으로 되받아 쳤다. 누가 뭐라든 8년여만에 중앙무대에 컴백한 '노빠꾸·답정너' 김 위원장의 폭주는 멈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주체의 민주적 참여를 활성화하고 중요 행위자간의 합의를 장려해 경제 사회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회안정과 조화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비전은 무려 '양극화 해소와 포용적 성장의 실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을 맡기는 것이 상당한 일일까 다시 숙고해야 한다. 국민의 '인사참사' 비판을 더이상 관성으로 받아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이 삼가 섬겨야 할 국민 앞에서 본인 체면만을 차려서야 되겠는가.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바로잡는 것이야 말로 대통령이 보여줘야 할  진정한 용기요 덕목이 아닐까.   
 
최기철 사회부장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