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샴푸의 요정'(그룹 '빛과 소금' 데뷔작 수록·1990)이 처음 나왔을 때, 그런 얘기들이 많았어요. '음악이 좋은 건 알겠는데,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숙제일 것'이라고. 그때는 정말 몰랐죠. 우린 딱 3~4년 활동했는데 그 음반, 그 곡이 30년 후까지 사랑받을 줄은..."
1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음반기획·제작사 '사운드트리' 사무실에서 만난 빛과 소금의 장기호(61)가 말했다. 거주지가 광명(光明)인 이유 때문인지, 특유의 유쾌한 직진 말투는 쏟아지는 유성우 같았다.
"진정을 다한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휘저어놓기 마련이거든요. 세대를 초월하죠. 변치 않는 다이아가 가치 있는 것처럼요. '샴푸의 요정'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곡입니다."
빛과 소금의 '빛' 장기호가 11년 만에 대중 강연에 나선다.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문화리더십’ 함양을 위해 개설한 특강에서다.
건축, 미술, 교양, 미학, 인문학 명사(名士) 들에 앞서 첫째날(19일 오후 6시) 연단에 오른다. 특이하게도 수강생은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다.
2011년 '나는 가수다' 출연(자문위원단장) 당시 삼성 임원들을 앞에 두고 키노트 강연도 해봤던 그다.
"단 한 번의 강의지만, 제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눠볼 계획입니다. 그분들도 저와 같이 산전수전을 겪었을 거라 생각해요.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숙성된 시간 끝에 익은 열매가 나오는 것은 매한가지구나'. 강의를 통해 교감하고 대중음악이 발전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고요."
1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음반기획·제작사 '사운드트리' 사무실에서 만난 그룹 '빛과 소금' 멤버 장기호.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그가 속한 빛과 소금(장기호·박성식)은 올해로 데뷔 32주년을 맞았다. 동아기획 사단이자 봄여름가을겨울과 사랑과 평화의 전 멤버, 김수철, 정원영, 김현철, 고 김현식(1958~1990), 유재하(1962~1987) 등과 교류하며 한국 대중음악을 선도한 ‘뉴 웨이브’ 집단. 1990년 대표곡 ‘샴푸의 요정’이 실린 데뷔작은 한국 시티팝의 원형이자, 팝 퓨전 영역을 개척한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샴푸의 요정'에 대해 "김현식 형님 뒤에서 연주하며 코러스 '깔짝' 하던 제가 '노래라는 걸 할 수 있구나' 알게 해준 음악"이라며 "사람들의 정서와 마음을 치고 들어가는 노래는 따로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가창력과 테크닉이 뛰어난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짚었다.
최근 레트로 시티팝이 재조명되고 바이닐(LP) 붐 현상이 일면서 김현철, 산울림, 아침, 시인과촌장 등과 함께 이들 음악은 재차 세상 밖으로 불려 나왔다. 선풍(旋風)의 진원은 MZ세대. 급기야 중단된 창작마저 재개됐다. 지난 5월 26년 만에 낸 정규 6집 ‘Here we go’ 수록곡 ‘Blue Sky’는 세련된 시티팝으로, 올해를 대표할 만한 역작이다.
그룹 빛과 소금, 두 멤버(박성식, 장기호)는 MZ세대 중심의 시티팝 기현상에 26년 만에 창작도 재개했다. 올해 5월 6집 ‘Here we go’로 돌아왔다. 사진=사운드트리
이번 강연의 주제는 '시대와 흐름을 초월해 존재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다. 스스로도 놀라운 시티팝 재조명 기현상을 짚고, 시대를 초월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눌 계획이다. 긴 생명력을 얻은 그의 음악이 시티팝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1986년 김현식의 3집 음반 중 '그대와 단둘이서' 작업으로 본격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1986년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전신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1989년에는 '사랑과평화' 4집 작업 당시의 멤버이기도 했다. 1988년 올림픽 공익광고 음악과 1992년 MBC 로고송 '잠깐만'도 그의 작품.
"'잠깐만'은 처음 부탁 받을 때 '잠깐 쓰고 말 거긴 하지만 제목이 '잠깐만'이 될 거라며 의뢰가 들어왔었거든요. 당시 잠실 근처에 있던 이수만 회장(현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 집에서 성악 출신인 저의 아내와 녹음을 했었어요. 직접 컴퓨터를 가져가서는 클라이언트 요구대로 초 단위 작업을 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몰랐죠. 그 노래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줄은..."
다음달 1일, 각각 35주기 및 31주기를 맞는 고 '(유)재하'와 '(김)현식이형'에 대한 기억도 더듬어갔다. "두 분이 살아계셨다면 딱 두 가지가 바뀌었을 것이라 봅니다. 하나는 1집보다 더 선진화된 음악들이 나왔을 것.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더 발전하고 대중화됐을 것. 특히 한양대 작곡과를 다니던 재하는 음악 형식론이나 분석법에 대해 저와도 공유를 많이 했거든요. 퀸시 존스나 스티비 원더, 존 워츠 같은 음악 구조를 학술적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어요."
대중음악이 긴 생명력을 얻기 위해선 "가사의 진정성도 중요하지만, 곡 자체가 가사만큼 설득력을 갖고 있느냐도 관건"이라며 "음악을 들었을 때 단순히 좋다 식의 평론과 교육도 바뀌어야 한국 대중음악산업 자체가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중음악 자체 제작 교재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미 화성학 책 ‘나는 모드로 작곡한다’(2017) 등을 내왔다.
"아이오니안 모드 같은 선법 작곡을 쓴 곡이 사람들을 편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음악이 된다는 식의 객관적 접근이 한국 대중음악계와 평론계, 교육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에도 스팅이나 폴 매카트니처럼 대중음악의 상징 같은 존재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 솔로 음반 작업에 중점을 두면서 빛과 소금 활동을 병행할 계획이다. 최근 그의 솔로 음반 'chagall out of town(2007)'이 평단으로부터 '명반' 딱지를 뒤늦게 받고 LP로 재제작된 쾌거도 있었다. 곧 발표할 솔로 음악은 스티비 원더 음악에 관한 사랑의 은유. "어릴 적부터 스티비 원더는 제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 마음 속에 뿌려놓은 씨앗에 관한 노래가 될 겁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