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 물질이 든 가습기살균제'는 수년 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아픈 과거다. 문제가 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 중 일부는 폐 조직이 굳어 호흡장애를 겪어야 했고 급기야는 사망에 이르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에 따르면 관련해 7793명이 피해를 호소했고 이 중 1792명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를 본 사람 중 상당수가 영유아나 임산부여서 안타까움을 더욱 자아냈다.
이처럼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대한민국의 재해'였기에 철저히 진상조사를 해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사건이 처음 드러난 후 10여년이 흘렀지만 그 목소리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살펴봐야 하는 조사당국의 책무는 다른 어떤 사건보다 당연히 무거웠다.
다만 이 사건을 맡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결론은 허탈하다. 공정위는 애경과 SK케미칼의 가습기살균제 부당 광고행위에 대한 판단을 조사 시작 6년이 지나서야 내렸다.
공정위가 관련 사건을 조사한 것은 2011~2012년, 2016, 2017~2018년 3번이다. 첫 조사는 2012년 인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무혐의'로 결론 냈다. 2016년에는 공소시효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아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이유로 '심의종료' 처분을 내렸다.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쥐여줬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시작한 세번째 조사에서는 애경에 8300만원, SK케미칼에 3900만원 과징금 물리고 각각 검찰 고발 조치했다.
하지만 2016년 조사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공정위가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인터넷 광고기사 3건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됐기 때문이다.
당시 공정위는 인터넷 기사의 경우 광고라고 보긴 애매해 이를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이들 기사는 애경이 배포한 보도자료 기반이라 사실상 광고와 성격이 유사했다. 기사에는 애경이 작성한 문구인 '영국에서 저독성을 인정받은 향균제', '인체에 무해한 향균제' 등 유해성을 생각하면 낯 뜨거울 정도의 표현이 그대로 적혔다. 공정위가 꼼꼼히 조사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공정위가 뒤늦게 문제를 인정하고 애경과 SK케미칼을 고발했지만 표시광고법을 기준으로 할 때 공소시효는 이달이 끝이라 형사처벌이 쉽진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결국 이번에도 엄중한 제재는 어려울 수 있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가족을 잃은 이들은 정부가 철저히 조사해 아픔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수년간에 걸친 조사에도 공정위의 결론은 허탈 그 자체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호소할 곳마저 줄면 피해자는 더욱 병들게 된다.
김지영 경제부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