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6일 동남아 순방 마친 윤 대통령…성적표는?

여 "대한민국 외교 정상화" 야 "순방 성적표 너무나 초라해"

입력 : 2022-11-16 오후 3:55:03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6일 오전 4박 6일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4박6일 간의 동남아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귀국했다. 이번 순방에서 윤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와 관련해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을 밝혔다. 이를 통해 미국의 인태 전략에 보폭을 맞추는 동시에 한미일 3개국 간 릴레이 회담으로 대북 공조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다만 한국판 인태 전략이 미국 기조를 답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지난 13일(현지시간) 프놈펜에서 개최한 한미일 정상회의 첫 공동성명에서도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과 매립지역의 군사화, 강압적 활동을 통한 것을 포함하여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중국을 직접 명시하지 않았지만 남중국해 문제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한국판 인태 전략에 대해 "확실한 미국 편이라고 공식 선언한 셈"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지난 14일 한 라디오에서 "인태 전략은 해양 세력끼리 뭉쳐 대륙, 즉 중국과 북한, 러시아가 없다"며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지만 너무 강조하다 보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국가를 다 배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아세안과 사이가 굉장히 좋기 때문에, 미국의 부담을 덜기 위해 아세안 국가들을 설득시키는 임무를 받은, 심하게 말하면 돌격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취임 후 첫 한중정상회담도 했다. 한중 정상회담은 지난 2019년 12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의 양자회담 이후 3년 만으로, 한중 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시 주석이 한국의 미국 밀착 기조에 견제구를 던지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양국 온도차를 여실히 보여줬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상호존중과 호혜에 기반한 성숙한 한중관계"를 강조했다. 반면, 시 주석은 "중국은 한국 측과 함께 중·한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고 주요20개국(G20) 등 다자간 플랫폼에서의 소통과 협조를 강화하며 진정한 다자주의를 함께 만들어 세계에 더 많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안정성을 제공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시 주석이 언급한 '진정한 다자주의'는 한국이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에 보폭을 맞추는 것을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또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전, 안정과 원활한 흐름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경제 협력을 정치화, 안보화하는 데 대해 반대해야 한다"고 언급, 윤석열정부에서 공급망, 군사협력 등 미국과의 밀착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데 불편한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그간 한국이 미국 주도의 중국 견제 경제협력체인 '인도·태평양프레임워크(IPEF)'와 '칩4(한국·미국·일본·대만)동맹'에 참여하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팬데믹과 글로벌 경기침체, 기후변화 등 당면한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 한중 양국의 대화는 필수적"이라며 "앞으로 상호 존중과 호혜에 기반한 성숙한 한중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한중 협력의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적었다. 이번 순방 성과와 관련해선 "자유와 연대의 정신을 바탕으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은 연대에 의해 보장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가 직면한 복합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 외교가 미국 일변도로 치우쳤다'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을 중심 축으로 해서 한중관계 등 여타 국가 관계를 도모해가는 협력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는 외교를 지향한다고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의 외교적 공간은 여전히 충분하다"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양자 현안을 넘어서 기후변화라든지 공급망 문제라든지 글로벌 이슈에 관해서도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돼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번 순방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개월 만에 두 번째 회동을 하면서 한일관계 개선 기류를 보여줬다. 지난 9월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첫 회동을 했을 당시 우리 정부는 '회담', 일본 정부는 '간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간극을 드러낸 바 있다. 이번에는 한일 모두 정상회담 형태라는 데 공감대를 갖고 진행됐다.
 
다만 한일 관계 역시 과거사 문제 등 풀어나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는 평가다. 특히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등 양국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한일 양측은 "조속한 해결을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는 원론적인 내용의 언급만 했을 뿐, 구체적 합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한국과 일본 외교 당국 간부에 따르면 회담에서 구체적인 해결방안에 대한 (정상 간) 의견 교환은 없이 당국 간 조정을 계속한다는 내용에 그쳤다"며 "합의 시기를 제시할 단계가 아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양 정상 모두 강제 징용 문제 해결책에 관해 상당히 밀도 있는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추가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간극이 좁혀졌으니 빨리 해소 방안을 모색해 문제를 속히 매듭짓자 그런 분위기였다"면서 "상당히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의기투합, 그런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김종대 전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에서 한일, 한중, 한미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그 자체는 평가해 줄 만하다. 특히 한중 정상회담이 매우 불투명했는데 성사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면서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까 서로 별로 만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만난 것처럼 시간도 25분에 한 마디씩하고 통역하고, 이견만 확인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중관계로부터 현 정부의 외교적 어려움과 도전이 밀려오지 않겠느냐, 이런 조심스러운 예상을 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여야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심장과 뇌 혈관 곳곳에 혈전이 잔뜩 쌓여 있던 한국 외교의 혈맥을 뻥 뚫었다"며 "윤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대로 대한민국을 정상화하고 있고, 대한민국 외교 역시 정상화의 길에 올랐다"고 했다.
 
반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이번만은 성과를 내놓기 바랐지만 돌아온 순방 성적표는 너무나 초라했다"며 "국제적으로 높게 평가받았던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 신북방 정책은 자취를 감췄다"고 혹평했다.
 
윤 대통령 순방 과정에서 크고 작은 논란도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동남아 순방 출국 이틀 전 '왜곡보도'를 이유로 MBC 출입 기자의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다. 프놈펜에서 지난 13일 열린 한미·한일 정상회담 당시에는 동행 기자단의 현장 취재가 불발돼 '풀 취재' 불허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정상외교 프로토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고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동하는 전용기에서 특정 매체 기자를 따로 불러 면담하기도 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이번 순방은 언론 통제의 낯부끄러운 신기록을 썼다"며 "언론 길들이기도 모자라 특정 언론만 상대하는 노골적 언론 차별, 언론 줄세우기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박찬대 최고위원은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프놈펜의 세브론 의료원 방문 일정에 대해 "해외순방 중 김 여사의 오드리 헵번 코스프레를 놓고 국민의힘 모 의원은 '국위선양을 위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계신 게 얼마나 자랑스럽냐'고 말했다"며 "자랑스러운가. 국위 선양은 마땅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왜 국민은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앞서겠냐"고 비판했다. 그는 "이쯤되면 국위 선양인지, 국제 망신인지 누가 봐도 분명하지 않느냐"며 "억지 쓴다고 해서 돌덩이가 금 덩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17일 한·네덜란드 정상회담, 18일 한·스페인 정상회담 등 국내 외교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방한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의 접견도 조율 중이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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