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군대 내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에게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숨진 군인 A씨의 어머니가 보험사 2곳을 상대로 낸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16년 12월 군에 입대한 A씨는 육군 보병사단에 배치된 후 선임병들에게 모욕과 폭행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그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괴로워하다가 2017년 8월 영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의 입대 전 사망보험 2건을 들어둔 A씨의 어머니는 해당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약관에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는 점을 들어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A씨의 어머니는 소송을 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A씨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는지였다.
1심과 2심은 A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라 보고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1·2심은 “A씨에게 환청, 환시, 망상 등 의사결정능력에 의심을 가질만한 증상이 없었던 등 사망할 당시 심리적 우울 상태를 넘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상실한 상태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반면 대법원은 "A씨가 소속 부대원들의 가혹행위로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극심한 고통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소속 부대 선임병들은 A씨에게 여러 차례 폭언하고 야구방망이로 폭행하는 등 가혹행위 정도가 매우 심했다"라며 "A씨가 가혹행위를 부대 간부에게 신고했으나 간부가 신고 사실을 공개해 내부고발자로 따돌림당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우울증의 원인인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를 피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고 사망 때까지 소속 부대도 변경되지 않았다"라며 "진료기록 감정 촉탁 결과 대학병원도 망인이 사망 직전 극심한 우울과 불안 증상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상태였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망 당시 A씨에게 흥분상태가 공황상태 등이 없다며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라며 원심을 파기환송한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사진=뉴시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