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무덤 젠큐릭스, 뒤에서 웃는 한국투자증권

"유증해서 빚 갚아라" 채무상환 위해 직접 나선 한투
최대주주 변경 가능성에 주가부양 나섰나…이상급등 '주의'

입력 : 2023-04-06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분자진단검사 업체 젠큐릭스(229000)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앞두고 유증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이 뒤에서 조용히 웃고 있습니다. 젠큐릭스는 이번 유증을 전환사채(CB) 조기상환 등 채무상환에 방점을 찍었는데요. CB로 조달한 자금을 유증으로 상환하는 '악순환'이지만, 주요 채무자인 한국투자증권이 주관사로 나서자 시장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젠큐릭스의 유증이 완료될 경우 기존주주들의 주식가치 희석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유증 주관을 통해 투자금회수는 물론 각종 수수료와 이자까지 챙길 수 있게 됐습니다.
 
젠큐릭스, 대규모 유증에 기관투자자 셈법 복잡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젠큐릭스는 이달 198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청약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오는 10일 확정발행가액을 공고하고 12~13일 구주주 청약을 진행, 14일 일반공모청약을 진행합니다. 1주당 신주 배정비율은 0.9265주이며, 한국투자증권이 주관사를 맡았습니다.
 
젠큐릭스가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선 것은 채무상환 때문입니다. 앞서 젠큐릭스는 코로나19로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던 지난 2021년 18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는데요. 당시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해 수성자산운용, 타임폴리오자산운용, 티지-비티 등의 기관투자자들이 CB를 인수했습니다.
 
CB의 최저 ‘리픽싱’(전환가액 조정) 한도는 최초 발행가의 80% 수준인 2만50원으로 결정됐죠. 다만 주식전환 청구 시점인 작년 6월 주가는 7000원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주식전환이 힘들어졌는데요. 결국 CB투자자들의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행사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자금이 묶인 기관투자자들은 유증을 앞두고 셈법이 복잡해졌습니다. 작년말 기준 젠큐릭스의 현금성자산은 58억원에 불과한데요. 젠큐릭스의 CB는 180억 규모에 달합니다. 유증이 완료되더라도 풋옵션이 모두 행사될 경우 젠큐릭스의 자금이 부족할 수 있어서죠.
 
수성자산운용은 유증 참여를 통한 ‘엑시트’ 전략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유증 참여를 위해 보유하고 있던 CB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 신주인수권증서(워런트) 받았으며 워런트를 추가로 매수했죠. 반대로 타임폴리오 자산운용은 보유한 워런트를 매도해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기관 눈치싸움 속 '꽃놀이패' 잡은 한투
 
기관투자자들이 유증 참여 여부를 두고 ‘눈치싸움’을 이어가고 있지만 한국투자증권은 젠큐릭스의 자금조달을 도와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대규모 유상증자의 주관사로 이름을 올리고 단기차입금 제공과 함께 실권주 발생시 전액인수 계약까지 체결했죠. 젠큐릭스의 채무상환이 힘들어지자 주요 채권자인 한국투자증권이 나선겁니다.
 
젠큐릭스는 이번에 조달하는 자금 중 90억원을 채무상환에 사용할 계획인데요. 이중 66.67%에 해당하는 60억원을 한국투자증권이 빌려줬습니다. 유증이 완료되면 한국투자증권은 자금회수는 물론 유증 인수수수료와 단기차입금의 이자 3억5000만원도 챙길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한국투자증권이 인수금액의 15%를 수수료를 받도록 해 유증 실패에 따른 리스크도 줄였죠.
 
다만 한국투자증권의 이런 행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다소 부정적입니다. 회사와 채권자가 채무상환 부담을 주주에게 떠넘기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죠. 젠큐릭스의 이번 유증 규모는 발행주식총수의 92.65%에 달하는데요. 기존투자자들 입장에선 유증 이후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과 주식가치 희석을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채권자인 한국투자증권이 젠큐릭스의 채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안정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주관사로 나선 것으로 보일 수 있다”면서 “최대주주 등의 청약 참여율까지 저조할 경우 회사의 빚을 기존 주주와 일반에 떠넘기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젠큐릭스, 유증 앞두고 이상급등…투자주의
 
젠큐릭스는 유상증자를 앞두고 호재성 자료를 발표하며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데요. 시가총액이 워낙 낮은 만큼 투자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젠큐릭스 입장에선 실권주가 대량으로 발생할 경우 실권주 수수료 부담과 함께 최대주주가 변경될 위험도 있어 주가부양에 힘써야하는 상황이죠.
 
젠큐릭스는 지난 3일 유방암 예후예측 검사 '진스웰BCT'와 온코타입DX의 정확도를 직접 비교한 임상연구 결과가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발표 주제로 채택됐다고 밝혔는데요. 4~5일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 2거래일간 68.74% 상승한 5830원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선 이런 주가급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상한가 전 젠큐릭스의 시가총액이 200억원대에 불과했던데다, ‘엑시트’하지 못한 기관투자자들도 많기 때문인데요. 대규모 자본 확충을 앞두고 주가 부양을 위한 호재만들기에 불가할 수 있어섭니다.
 
미국임상종양학회(ASCO)는 세계 3대 암 학회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매년 진행되는 행사로 200여개의 구두 및 포스터 발표가 진행됩니다. 올해도 200개 이상의 프로그램이 예정됐으며, 지난해에만 20여 곳이 넘는 국내기업이 발표를 진행했죠.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주들의 경우 각종 학회 개최를 앞두고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시가총액이 낮고 유동성이 적은 종목의 경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이번 유증에서 실권주가 22% 이상 발생할 경우 젠큐릭스의 최대주주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유증으로 발행되는 신주는 총 647만4000주로 젠큐릭스 발행주식총수(666만8588주)의 92.65%에 해당합니다. 최대주주는 30%의 청약을 예고했는데요. 조 대표의 지분율은 기존 15.93%(111만2911주)에서 10.57%(142만2244주)로 감소하게 됩니다. 발행예정 신주의 22%(142만4280주)만 미달이 발생해도 잔액인수 조건에 따라 한국투자증권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됩니다. 앞서 엔지켐생명과학(183490) 역시 유증에서 대량의 실권주가 발생. 최대주주가 KB증권으로 변경된 바 있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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