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블랙핑크, 코첼라 간판 무대 걸맞는 '알맹이'는 아쉬워

한국말 따라하고 태극기 흔들고…인디오 사막 물들인 분홍빛 함성
아시아 최초로 '포스트 우드스탁' 코첼라 헤드라이너 무대 선 블랙핑크

입력 : 2023-04-17 오후 4:06:02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현대적 힙합 풍 비트를 검은 흙처럼 튀겨대는 거문고의 장단과 주술처럼 영어 발음을 길게 늘어뜨리며 "블랙~핑크"라 외치는 수만명의 떼창.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사막 지대의 검은 밤은 순식간에 분홍빛 파도 같은 외침들로 물들었습니다. 16일(한국시간) 하루 입장만 12만5000명에 달하고, 전 세계 2억 5000만여명이 온라인으로 지켜본 블랙핑크의 '2023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코첼라)' 무대. 
 
현지 사정으로 예상보다 30분가량 지연됐음에도, 글로벌 팬덤 블링크(BLINK)를 포함한 현지 객석은 '핑크 베놈'의 도입부를 제창하는 장관을 이뤘습니다. 이들 머리위로 날아오르는 드론쇼 연출은, 올해 코첼라가 '주인공(헤드라이너·간판 출연진)' 블랙핑크에 압도적인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였습니다.
 
1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사막 지대에서 아시아 최초로 코첼라 헤드라이너 무대 선 블랙핑크. 사진=뉴시스·AP
 
이윽고 화려한 군무의 댄서들과 함꼐 라이브 록 밴드 사운드로 편곡된 '핑크 베놈' 도입부와 함께 검정과 분홍 의상을 섞어 입은 그룹 블랙핑크가 나오자 열기는 극에 달했습니다.
 
1999년부터 시작한 코첼라는 매년 20만~30만명의 관객이 참가하는 세계적인 음악 축제입니다. 대중적 인기를 넘어 음악성을 갖춘 아티스트를 선별해 초청하기 때문에 수많은 뮤지션이 열망하는 '꿈의 무대'로 통합니다. 음악뿐 아니라 패션·라이프 스타일 등 문화 전반의 트렌드를 교류하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블랙핑크의 코첼라 출연은 두 번째입니다. 이번 무대는 2019년 K팝 여성 그룹 최초로 '코첼라' 무대에 오른 뒤 4년 만이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라틴 팝스타 배드 버니,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얼터너티브 R&B 음악가 프랭크 오션과 함께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K팝 넘어 아시아 가수 중 이 무대 헤드라이너로 선 것은 블랙핑크가 처음입니다.
 
이날 무대에서 1시간20분가량 그룹은 히트곡들을 수놓았습니다. 두 번째 곡 '킬 디스 러브(Kill This Love)'를 시작으로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프리티 새비지(Pretty Savage)'까지 이어가며 열창했습니다.
 
1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사막 지대에서 아시아 최초로 코첼라 헤드라이너 무대 선 블랙핑크. 사진=뉴시스·AP
 
압도적이었던 것은 한국말도 익숙한 듯 따라부르는 현지 관객들이었습니다. 분홍색 응원봉을 흔들고, 무대와 가까운 객석 한편에서 커다란 태극기도 눈에 띄었습니다. 멤버들 역시 "4년 전에도 코첼라에서 초청받아 공연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악 축제에 헤드라이너로 서게 됐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로제)"며 고무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프리티 새비지'- '킥 잇(Kick It)'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의자 퍼포먼스를 펼쳐보이거나, 멤버들 솔로 파트에선 상아색, 빵강, 검정, 푸른색 등의 색깔을 무대에 투영하는 시각적 연출을 꾀했습니다. 댄서들의 대형 깃털 부채 퍼포먼스('타이파 걸')나 불기둥('불장난')을 활용한 규모 있는 무대 장치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알맹이가 있었던 무대'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코첼라 주인공 자리는 단순히 글로벌 팬덤의 규모나 막대한 물량 투입만 과시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단독공연처럼 셋트리스트만 나열하는 자리도 아니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다 가는 패션쇼 기능만 하는 자리도 아닙니다. 
 
대중적 인기보다, 출연진들은 예술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화두로 삼은 공연을 펼쳐 '포스트 우드스탁'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자리입니다. 2012년, 닥터드레는 사망한 래퍼 투팍의 프로젝션을 무대에 처음으로 띄워 미국의 힙합을 돌아보는 역사적인 무대를 꾸몄습니다. 오늘날 국내에서도 대중적이 된 '홀로그램 공연'을 10년 일찍 선보였던 겁니다. 2018년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 헤드라이너에 선 비욘세는 데스티니 차일드 멤버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흑인의 음악과 문화에 대한 의미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올해 블랙핑크 전날 무대에 오른 배드 버니 역시 라틴 음악의 역사부터 고국 푸에르토리코의 열악한 상황을 비추는 음악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했습니다.
 
블랙핑크의 코첼라 무대는 '글로벌 소셜 팬덤 시대'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어떤 함축을 읽어낼 수 있을지는 사실 의문이었습니다. K팝이 어떻게 세계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는지, 그 굵직한 이야기를 전체적인 연출의 뼈대에 놨어야 했습니다. 차라리 무대에 북청사자 놀음까지 무대에 동원한 BTS의 '아이돌' 같은 연출이면 어땠을까 하는 순간이었달까요. 화려하게 반짝이는 의상과 조명이 그저 K팝임을 보여주고 내려오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자리였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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