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쓰레기냐?"
토론회 형식의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방청석을 향해 일갈합니다. 좌중은 '빵' 터집니다. 그는 보란 듯 기세를 몰아 방금 전까지 자신을 닦아 세우던 상대 진영 패널을 향해 역공을 폅니다. 의기양양한 것이, 입가에는 짐짓 미소까지 흐릅니다. 움찔한 출연자들이 딱히 을러대지 못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갑니다. 출연자들 중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한 편이 된 그들은 또 다른 먹잇감을 조준하고 맹공을 퍼붓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만 쓰레기냐?"는 말은 사회 곳곳에서 강력한 '만능 치트키'가 되었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심지어 재판에서도 등장합니다. "이러저러한 사실관계는 인정하나 그것은 어디어디의 오래된 관행인 바, 피고인에게만 물을 책임이 아니라 이렇게 만든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니 피고인은 무죄이다." 퍽 해괴한 논리입니다.
이른바 '민주당 전대 돈봉투 사건'(검찰의 공식 사건명은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금품 살포·수수 의혹사건') 파장이 일파만파입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외신 설화'나 여당 지도부의 '막말'사태로 오랜만에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난 말 그대로 '암초'입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대국민 사과에 나서고 송영길 전 대표가 탈당 선언과 함께 급거 귀국하면서 일단 더불어민주당은 한 숨을 돌리는 눈치입니다.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이정근 파일' 등 언론을 통해 공개된 그날의 상황은 간단명료하고 선명해 보입니다. 게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등장한 검찰의 '심야 구속영장 청구'를 보면, 검찰의 수사 스텦이 빠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 합니다. 사건의 핵심인 강래구씨가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정으로 들어가기 전 남긴 "언젠가는 말할 날이 있겠죠"라는 말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합니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는 이렇다 할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이번 사건 역시 '야당에 대한 정치검찰의 탄압'이라면서 당 차원의 진상 조사는 없고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겠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당 내부에서 '의원 169명 진실 고백 운동'이라는 선 제안이 나왔을까.
한 정치 원로가 지적했 듯, 전당대회 '금품 살포'는 여야를 막론하고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정치권의 관행 아닌 관행입니다. '식구끼리'의 일이기 때문에 제보가 없을 뿐입니다. '암수범죄' 그만큼 많다는 겁니다. 아직까지 민주당 내에서 '식대 정도의 실비'라는 따위의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본인들만 모르는 모양입니다. 이러니 대통령실과 여당이 스스로 헛발질을 해도 딱 그만큼만 지지율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설마 민주당으로서는, '얼마 전 우여곡절 끝에 끝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도 돈봉투가 튀어나오지나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나만 쓰레기냐?"는 논리가 소송전략으로까지 등장한 건 '조국 사태'였습니다. 그 끝은 어땠습니까. 정권교체는 별론으로 하고, 여당이 굴착한 '탄핵의 강' 만큼이나 넓고 깊은 '조국의 강'을 국민들 가슴 속에 파 놓았습니다. 지금 민주당은 그 이후로 얼마나 변했습니까. 검찰도 엄중하게 수사해야 하겠으나 민주당부터 '방탄 정쟁'을 멈추고, 뼈를 깎는 자세로 존재의 필요성과 지속 가능성을 국민 앞에 증명해야 합니다. 진보는 분열로만 망하는 게 아닙니다.
최기철 미디어토마토 부장·법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