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는 고공행진, 간판 현중은 매년 적자…두둑한 배당금, 총수 일가로

현대중공업 회사 분할 후 6년…현중 노조 “깡통 생산기지 전락”
지배구조 개편 후 총수 일가는 수천억 배당 이익…승계자금 마련 의심도
노조 “이익은 총수 일가가, 적자 책임은 노동자가”…HD현대 “분할은 위기극복 위한 경영적 판단”

입력 : 2023-06-1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유연석·배덕훈 기자] “돈 되는 건 모두 현대중공업 주머니 안에 있었는데 다 쪼개지고, 지금의 현대중공업은 생산기지밖에 안 되는 깡통회사가 됐죠. 우리끼리는 울산공장이라 불러요. 현장에서도 다 알아요. 이 모든 게 정몽준-정기선으로 이어지는 총수 일가를 위한 분할이었다는 것을요.” 
 
지난 8일 ‘2023년 임단협 출정식’을 진행한 HD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관계자의 말입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회사 구성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6년 전 진행된 지배구조 개편 이후 지금까지 회사는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HD현대 사옥인 글로벌R&D센터(GRC) 전경. (사진=HD현대 제공)
 
전자공시시스템을 확인하면, HD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HD현대는 지난해 매출 60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연결기준 매출 60조8497억원, 영업이익 3조387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14.6%, 226.7% 늘었습니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별도기준 매출 9조653억원, 영업손실 2868억원, 당기순손실 3501억원에 그쳤습니다. 당기순손실 기준 2019년부터 4년 연속 적자 상황입니다. 이 같은 손실은 조선업 불황기가 장기화된 탓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조 관계자는 6년 전 현대중공업 회사 분할로 인해 알짜배기 현금창출원(캐시카우) 사업이 모두 떨어져 나간 영향이 크다고 봤습니다. 
 
◇ 미래 경쟁력 확보 vs 총수 일가 위한 분할
 
현대중공업의 분할은 2016년 11월에 이뤄졌습니다. 이사회는 현대중공업을 6개의 회사로 분리하는 안건을 의결합니다. 회사는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현대중공업지주(구 현대로보틱스, 현 HD현대) △현대글로벌서비스 △현대그린에너지로 쪼개집니다.
 
당시 현대중공업 측은 “그동안 성격이 다른 사업들을 현대중공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운영해 왔으나, 조선 위주의 사업 운영으로 비효율이 발생했다”며 매출 비중이 적은 사업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 재도약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목적이라고 분할 이유를 밝혔습니다.
 
사업규모가 큰 4개 회사(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현대중공업지주)는 인적분할로, 사업규모가 작은 2개 회사(현대글로벌서비스,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는 100% 지분을 보유하는 현물출자방식으로 분할이 이뤄졌습니다.
 
이어 이듬해 2월 임시주주총회에서 4개 회사 인적분할을 의결하면서 미리 물적분할한 현대글로벌서비스(지분율 100%)와 오랫동안 자회사였던 현대오일뱅크(지분율 91%)의 지분 전량을 현대중공업지주에 배정합니다. 
 
◇ 지주사로 빼앗긴 ‘캐시카우’ AS사업
 
현대중공업의 자회사가 지주사의 자회사가 된 것이 노조가 ‘총수 일가를 위한 기업구조 개편’이라고 해석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현대중공업의 선박 AS 부품(엔진, 펌프 등) 공급과 보증서비스 부분을 따로 떼어내 설립한 회사입니다. AS 사업은 현대중공업 기업집단 내에서 사업위험이 낮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캐시카우’ 사업으로 평가받았습니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지난해 별도기준 매출 1조808억원을 달성했는데, 설립 첫해인 2017년 매출 2382억원에서 5배가량 급성장한 결과입니다. 직원 수가 400명대인 회사가 설립 6년 만에 매출 1조원을 이룬 건 업계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현대글로벌서비스는 AS 부품을 직접 제작·생산하지 않고, 현대중공업 또는 현대중공업의 기존 거래처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납품합니다. 또한 AS사업은 현대중공업이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면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일감입니다. 현대글로벌서비스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매출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무상 보증기간 이후의 선박 관리서비스 사업은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직접 선주와 계약을 맺기에 스스로 창출한 사업으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현대중공업이 쌓아놓은 선박 수주 및 인도 등에 관한 각종 경영정보 없이 신설법인이 쉽사리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런 관계를 종합하면 현대중공업이 직접 하거나 독립회사로 두더라도 현대중공업의 자회사로 두는 게 자연스럽지만 지주사의 자회사로 편입됐습니다. 현대중공업 노조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수주하고 생산한 선박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빼앗겼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 매출 급성장 현대글로벌서비스, 지주사에 수천억원 배당
 
당시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는 ‘총수 일가 배 불리기’, ‘승계자금 마련’이 진짜 목적이라고 의심했습니다. 2018년 제윤경 의원실이 발행한 국정감사 정책자료집을 보면, 금속노조 법률원 노종화 변호사(현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는 “사업회사에 귀속됐어야 하는 이익과 사업기회를 총수 일가의 지배권 강화 및 부의 집중에 활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총수 일가가 보유한 지주회사의 지분율은 30.9%였습니다. 반면 현대중공업에 대한 지분율은 약 8.6%(총수일가 지분 30.9% X 지주사의 현대중공업 지분 27.8%)에 불과했습니다. 지주사 아래 둬야 더 많은 배당금을 받기 유리하고, 상장을 통한 지분가치 상승도 모두 지주사가 누릴 수 있습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의 기업분할 과정에서 유상증자 공모를 통해 지주사 지분 15.65%를 추가로 확보하면서 총 25.8%(현 26.6%)의 최대 주주가 됐고, 같은 시기 정 이사장의 아들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당시 현대중공업 부사장)는 5.1%(현 5.26%)의 지분을 취득합니다.
 
정 대표는 지주사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약 3000억원을 증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증여세는 1500억원가량입니다. 정 대표는 증여세를 5년간 6회에 걸쳐 분할 납부하기로 했습니다. 정 대표의 수익원은 급여와 지주사의 배당금이기에 자회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야 지주사로 배당이 확대됩니다. 다시 지주사의 배당은 정 대표가 승계자금 마련을 위해 추가 주식을 사들일 자금줄이 될 수 있습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 배당 현황. (표=뉴스토마토)
 
실제로 꾸준히 매출 성장을 이룬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4300억원을 배당했습니다. 2021년 6월 사모펀드 KKR이 설립한 Global Vessel Solutions, L.P.에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지분 38%를 6534억원에 매각해 현재 지주사 지분은 62%로 줄었습니다. 이를 감안해도 지주사가 가져간 배당금은 총 3844억원입니다. 
 
◇ 급성장 배경에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현대글로벌서비스는 매년 매출 기록을 경신하며 급성장했는데, 그 배경에는 계열사 거래를 기반으로 한 일감 몰아주기 덕분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글로벌서비스의 계열사 거래 매출액은 지난해에는 3205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약 30%입니다. 이중 국내 계열사 거래가 871억원, 국외 계열사 거래가 2334억원입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 연도별 매출과 계열사 거래 현황. (표=뉴스토마토)
 
공정거래법은 오너 일가가 지분의 20%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나 비상장사가 그룹 계열사와 총액 200억원, 또는 평균 매출의 12%를 넘는 계약을 할 수 없도록 내부거래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를 넘어선다고 해서 무조건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내부거래를 해야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합니다.
 
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국외를 제외한 국내 계열사 거래만으로 판단합니다.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지난해 국내 계열사 거래 매출 비중은 전체의 약 8% 수준입니다. 국외 거래를 제외한다는 것이 전체 계열사 거래 비중을 낮게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를 일으킨다는 지적도 뒤따릅니다.
 
◇ 총수 일가 위한 고배당의 또 다른 한 축 ‘현대오일뱅크’
 
현대글로벌서비스뿐만 아니라 현대오일뱅크가 지주사의 자회사로 편입된 것 역시 결국 총수 일가를 위한 작업이라는 의심을 받습니다. 현대오일뱅크는 국내 정유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공룡 중 하나로 HD현대 그룹 내에서 현금 및 이익 창출 능력이 최상위권에 있습니다.
 
현대오일뱅크는 2017년 지주사의 자회사가 되기 전까지 현대중공업 연결기준 실적을 견인해왔습니다. 특히 조선사업이 큰 불황을 겪었던 2013~2015년 현대오일뱅크가 큰 도움이 됐을 만큼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알짜배기 자회사였습니다.
 
그런데 현대오일뱅크의 10년 배당내역을 보면 2014년까지는 배당을 하지 않다가 2015년에 3064억원을 배당하고, 2016년에는 다시 배당을 하지 않다가 2017년부터 매년 배당을 진행합니다. 현대중공업의 자회사일 때는 유독 배당을 하지 않다가 지주사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부터 고액배당을 진행한 겁니다.
 
HD현대오일뱅크 배당 현황. (표=뉴스토마토)
 
지난해까지 평균 배당성향은 70%대로, 심지어 2020년 별도 기준으로 당기순손실(4575억원)이 발생했을 때도 결산배당으로 951억원을 지급하는 등 이익 유보보다 지주사로의 자본 이전에 주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대글로벌서비스와 현대오일뱅크는 매해 합쳐 수천억원에 이르는 금액을 지주사에 배당했고, HD현대는 그 자금을 바탕으로 매해 약 3000억원의 배당을 단행합니다. 이를 통해 정몽준 이사장과 정기선 대표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배당 수익은 각각 4000억원, 791억원으로 추산됩니다.
 
◇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과거 위상 사라져”
 
이처럼 현대중공업 분할 이후 총수 일가는 매년 막대한 배당금을 챙겼지만, 그룹의 상징이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립니다. 알짜 부문 사업이 떨어져 나가고 조선업 불황이 겹쳐 적자 행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투자 등 현재의 열악한 환경 개선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노조 관계자는 “분사가 되기 전에는 현대중공업 안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었는데, 알짜배기 AS부문은 현대글로벌서비스로, 수주 실적은 한국조선해양으로, 특허는 HD현대로 가다 보니 실질적으로 현대중공업은 생산기지밖에 안 되는 깡통회사가 됐다”고 푸념했습니다.
 
지난 2019년 현대중공업 노조가 회사의 물적분할 무효를 주장하며 울산에서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이제 희망이 없다고 보고 있다”며 “현대중공업이 실질적인 위치에 있을 때는 어느 정도 투자가 계속됐지만 이제는 투자나 인력 수급도 잘 이뤄지지 않고 개발도 전보다 확실히 안 되고 있다. 현장에서 불만의 소리가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8일 임단협 출정식을 진행하고 기본급 인상과 노동 복지 등을 요구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는 적자라 기본급 인상이 어렵고 줄 수 있는 돈이 한정적이라고 하는데 분사는 총수 일가가 다 해놓고 책임을 노동자한테 전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성토했습니다. 그러면서 HD현대그룹이 공정한 분배와 과감한 투자를 약속한다면, 노조 역시 경영 정상화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 HD현대 “지배구조 개편, 위기극복 위한 경영적 판단”
 
HD현대 측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노조의 주장에 대해 부인했습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대한 정부의 권고, 조선업 불황으로 인한 경영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겁니다. 당시 분할이 없었다면 큰 규모의 차입금과 높은 부채비율로 인해 현대중공업의 경영 정상화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HD현대 측의 주장입니다.
 
현대글로벌서비스와 현대오일뱅크의 고배당 기조를 통해 총수 일가로 들어간 막대한 자금이 승계자금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주주에게 환원하는 것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으로 경영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투자자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만큼 수익이 발생함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배당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HD현대 측은 현대글로벌서비스를 향한 여러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먼저 총수 일가가 이익을 향유하기 위해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지주사의 자회사로 편입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사업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투자와 신사업 육성을 담당하는 지주사에 편입시키는 것이 미래 사업 성장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로 현대글로벌서비스가 급성장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룹 내 조선사들이 건조한 선박에 대해 무상서비스, 스마트 솔루션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해당 사업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7%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HD현대 측은 “현대중공업이 생산기지로 전락했다는 것은 오해”라며 “분할 이후 지속적으로 미래 사업을 위한 투자를 이어왔다. 조선업황 회복으로 향후 본격적인 실적 개선이 이뤄지면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 등도 함께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습니다.
 
유연석·배덕훈 기자 ccb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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