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1세대 PC방 사장의 한숨 "여긴 이제 식당…무인 가게 열려고요"

PC방 아르바이트 19시간 체험
한때 e스포츠 열풍으로 창업 상징
이제는 컴퓨터 하는 분식집으로
애매한 정체성에 가격 인상 어려워
26년 PC방 장사 이제는 접는다는 사장

입력 : 2023-07-21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19일 저녁 서울 성동구 응봉동의 한 가게. 주방 한 켠에서 쌀밥과 라면이 익고 있습니다. 그 옆에선 콜라, 환타, 스프라이트를 머금은 기계가 언제든 음료를 쏟아낼 준비를 마쳤습니다. 계산대 화면에는 '딩동'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주문 내역이 줄줄이 뜹니다. 이때 중학생 한 명이 계산대에 다가와 묻습니다. 
 
-"밥 언제 돼요?"
"어. 곧장 되면 아저씨가 갖다줄 거야."
 
이곳은 26년 경력 이천희(50) 사장이 일당백 분투하는 '락 PC방'입니다. 한때 스타크래프트와 e스포츠 열풍으로 창업의 상징으로 떠올랐지만, 이제는 '게임하는 분식집'으로 뒤바뀐 PC방의 모습을 이날 19시간 동안 체험했습니다.
 
19일 오전 5시 서울 성동구 응봉동 소재 '락PC방'에 에어컨 두 대와 선풍기 열 다섯 대가 가동되고 있다. 24시간 영업장이다보니 손님이 없을 때도 냉방해야 한다. (사진=이범종 기자)
 
전기세 부담에 가슴이 철렁
 
"어휴, 미치겠네." 오전 5시에 직원과 교대한 이 사장은, 남은 손님이 두 명인데 냉방은 24시간 해야 한단 사실이 괴롭습니다. 6월 전기세가 154만원인데 여름은 이제 시작입니다. 9월까지는 매월 200만원 넘는 전기세를 각오해야 합니다.
 
이 사장은 흡연실로 들어가 디스 오리진 한 개비를 꺼내 물었습니다. 엔데믹이라고들 하지만, 이 사장에겐 코로나19 팬데믹의 상흔이 빚으로 남았습니다. "1억2000만원 빚을 졌죠. 올해 8월6일까지 코로나 보전 대출 3000만원 중 10%인 300만원을 내야 하는데, 내년 인건비도 오르잖아요. 저흰 요금을 하나도 못 올렸어요."
 
PC방 이용료는 1시간 기준 1000원입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2000년대에도 그랬습니다. PC방 사장들이 요금을 올릴 수 없는 이유는 업계를 주도할 수 없는 소상공인이기 때문입니다. 콘텐츠는 게임사가 만듭니다. PC방은 그 게임을 할 자리를 제공할 뿐이죠. 시설과 위치 경쟁이 심한 자영업자 틈바구니에서 혼자 가격을 올릴 수도 없습니다.
 
이 사장은 자주 트는 에어컨 세 대의 필터를 떼고, 저는 걸레를 쥐었습니다. 백 다섯 자리의 먼지를 털고 키보드와 유·무선 마우스도 닦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 사장은 긴 막대에 묶은 빗자루를 꺼냈습니다. 1층 천장에서 올라오는 거미줄을 걷어내야, 4층에 있는 PC방 첫인상을 망치지 않으니까요.
 
곧이어 숙원 사업인 의자 수리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씨름하듯 커다란 의자들을 차례로 눕히고 팔걸이와 방석 가죽을 갈았습니다. 네 번째 의자를 고치려 할 때 계산대에서 '딩동'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때가 11시 32분. 점심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 시간 동안 조리와 음식 나르기가 이어졌습니다. 이 사장은 결국 나머지 의자 수리를 뒤로 미뤄야 했습니다.
 
19일 락PC방 사장 이천희씨가 주방에서 조리하고 있다. 이 사장은 "내가 PC방 사장인지 음식점 주인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진=이범종 기자)
 
PC 하는 분식집, 입맛은 제각각
 
PC방 음식은 정체성이 모호합니다. 손님 입장에선 여기가 전문 음식점이 아니니 식사비가 비싸선 안 됩니다. 하지만 내 입맛에 맞춰야 하고요. 해쉬 브라운을 갖다 주면 '케첩 안 먹는다'고 돌려보내기도 하고, 계산대를 찾아와 "아메리카노 맛이 전과 다르다"고 따지기도 합니다. 이 가게 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1000원입니다. 원하는 군것질 거리가 없으면 메뉴에 넣어달라고 요구하는데, 그래서 열 개를 들여놓으면 한 달에 한 번 찾아와 하나를 사간다고 합니다.
 
락PC방 매출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60~70%입니다. 그래서 외부 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장은 "밖에서 4500원짜리 음료를 사들고 와 여기서 버리고, 시키는 음식은 1000원짜리"라며 "손님이 밖에서 컵라면 들고 와 먹고는 세면대에 쏟아부어 망가뜨린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딩동 딩동' 음식 주문은 하루 종일 밀려왔습니다. 낮 시간엔 그나마 음료 비중이 높지만, 오후 5시 넘으면 난이도가 급상승합니다. 공기밥에 순두부 열라면, 떡라면, 짜파구리, 돈까스 카레···. 손님들 저녁 식사가 10시까지 이어집니다. 이 사장은 6시 반에 끓여놓은 라면을 7시 반에야 먹었습니다. 다 식어 떡이 된 라면을 씹는 둥 마는 둥 단숨에 밀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 이 사장이 해쉬브라운에 케찹을 뿌리자, 불안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사장님. 이 분은 케첩 안 드시는 분 아니죠?
"(화면을 보며) 아! 이 분은 아니세요. 다행이다(웃음). 이걸 어떻게 아느냐면, 그 분은 제로 콜라를 같이 시키시거든요."
 
제가 빈 음료와 식판 회수, 손때와 음식 묻은 키보드·마우스 청소를 했지만, 이 사장의 모자란 손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머니 팔순 기념 가족 여행도 못 따라갔다"는 이 사장의 말을 실감했습니다.
 
이천희 사장이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조리해 전달하러 나서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인건비 상승 겁나지만 "어려운 일이라 뭐라 못해"
 
문화체육관광부 '2022 게임백서'에 따르면, PC방은 팬데믹을 겪으며 1만개의 벽이 깨졌습니다. 전국 PC방 등록 업소는 2019년 1만1871곳이었다가 2020년 9970곳, 2021년 9265곳으로 조사됐습니다. 2만1547곳이던 2009년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사업장이 남은 겁니다.
 
여유가 없어진 사장들은 인건비가 두렵습니다. 2021년 같은 조사에서 1062개소 대표자 하루 평균 근로 시간은 9.2시간이었습니다. 10시간 이상 12시간 미만이 30%로 가장 많았고, 12시간 이상이 21%를 차지했습니다.
 
이날 2024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9620원보다 2.5% 오른 시급 986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올해 1만2000원을 줘도 사람 구하기 힘드니, 내년엔 1만3000원을 쥐어줘야 할 겁니다. 이 사장은 "음식 제공이 주가 되지 않던 5년 전이었으면 할 말이 많았을 것"이라며 "이젠 산발적인 주문 응대가 힘드니까 뭐라고 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때 계산대 벽면을 흥행 게임 패키지로 가득 채웠던 PC방은, 대작 게임 부재와 이를 타개할 음식 제공 경쟁 때문에 업의 본질을 벗어나게 됐습니다. 이 사장은 지난달 출시된 '디아블로IV'에 기대를 걸었지만, 그 효과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통계 사이트 더로그에 따르면, 이달 10~16일 PC방 디아블로IV 이용 순위는 7위를 차지했습니다.
 
최근 넥슨이 출시해 100만장 넘게 팔린 '데이브 더 다이버'도 PC 게임이지만, 이날 온 손님 중 이 게임을 찾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사장은 "게임사들이 자사 게임으로 유인하는 데 효과가 낮은 PC방 프리미엄(PC방에서 접속시 게임사가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보상) 말고 확실한 유인을 제공하면서 PC방 이점을 살릴 대작 게임을 만들어줘야 PC방이 살아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형 게임사들은 PC방 손님이 자사 게임을 이용하면 PC방 요금 중 300~400원을 프리미엄 제공 대가로 가져가는데요. PC방 사장 입장에선 PC방 접속 시 주어지는 아이템 품질이나 경험치 가치가 낮고, PC방을 찾게 하는 행사도 몇 차례 열리지 않는다며 불만입니다.
 
19일 저녁 이 사장이 끓인 라면이 계산대에서 식어가고 있다. 그 옆에 손님에게 받은 음료 값 1000원이 놓여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26년만에 가게 접기로
 
한숨 섞인 담배 연기를 내뱉던 이 사장은, 흡연실 너머로 손님의 주문 창을 유심히 살피다 급히 문을 열며 외쳤습니다. "비비고 두부 김치찌개 지금 없어요!"
 
정신 없는 하루가 지나고 밤 11시가 됐습니다.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딩동 소리가 울렸습니다. 이 힘든 생활을 어떻게 이어왔는지 물었습니다. "늘 이렇진 않았어요. 편할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었죠. 근데 지금은 앞이 안 보이니까···."
 
허심탄회하게 모든 걸 털어놓은 이 사장은 PC방 운영을 계속할 생각이 없습니다. "내년 4월까지는 임대 계약 기간이니까, 그때까진 버텨야죠. 사람에 지쳐서 아이스크림 파는 무인 가게를 생각 중인데, 그래도 가게엔 나올 거예요." 마지막 담배를 태운 이 사장은 편의점에 들러 디스 오리진을 집었습니다. 고달픈 인생의 유일한 도피처, 흡연실에 가기 위한 아이템을 그는 오늘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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