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링코노믹스' 가속화…"사실혼·팍스제 등 문화·가치 병행해야"

"OECD 중 합계출산율 1이하…한국이 최초"
"1년에 30~50만명씩 생산인구 빠져나가"
"결혼 형태 다양해야"…60대 이상도 84.8% '동의'
"스펙·취업 강조…한국 문화·가치 우선순위 바꿔야"

입력 : 2023-11-29 오전 5:00:00
 
[뉴스토마토 이민우 기자] 저출생·고령화 심화에 따른 축소경제(슈링코노믹스)가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반드시 결혼을 통해서만 가족을 꾸려야 한다’는 한국 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왔습니다.
 
국가소멸 우려 등 악화한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해 '비혼 출산', '프랑스의 팍스 제도' 등과 같은 가족의 형태 다양화가 요구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즉, 정부가 결혼·출산·양육에 대한 비용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것 못지않게 '문화·가치'를 바꾸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인실 한반도미래연구원장은 28일 ‘적신호 인구, 청신호 정책으로 해법 찾기’를 주제로 열린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강연을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 이하로 내려간 나라는 한국이 최초"라며 "국가소멸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슈링코노믹스' 본격화
 
한국은 지난 2020년 사상 처음으로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산인구가 줄어든 것은 이보다 앞선 2018년부터입니다. 전체 인구의 70~71% 수준을 유지해 오던 생산가능 인구는 본격적인 감소세로 돌아섰고 가속화 추세입니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3738만명에서 2040년 2852만명으로 떨어집니다. 이후 2060년 2066만명까지 추락할 전망입니다. 총인구는 2020년 5184만명에서 2040년 5019만명, 2060년에는 4262만명까지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총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가 더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것은 미래 생산가능인구 1명이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가 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인실 원장은 "1년에 30~50만명씩 생산인구가 빠져나가고 있다"며 "2030년쯤 되면 부산이 없어지는 정도의 슈링크노믹스가 발생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슈링코노믹스는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줄며 생산·소비·투자를 비롯한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는 "국제적으로 비혼 출산율은 올랐지만, 한국과 일본만은 3%가 안 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비혼 출산과 관련해 극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저출산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며 "비혼 출산, 프랑스의 팍스 제도 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은 ‘적신호 인구, 청신호 정책으로 해법 찾기’를 주제로 강연을 열였다고 28일 밝혔다. 사진은 길 걷는 노인 모습. (사진=뉴시스)
 
"다양한 결혼제도 인정해야"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은 사실혼 등 다양한 형태의 결혼제도를 인정하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 77%는 사실혼 관계에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프랑스의 팍스 제도가 저출산 문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습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 19세 이상 79세 이하 실시한 '저출산 인식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81.0%가 결혼제도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연령대를 불문하고 나타났습니다.
 
다양한 제도를 인정해야 하는지 여부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 중에는 의외로 60대 이상이 84.8%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다음으로는 40대(83.6%), 50대(80.5%), 20대 이하(78.3%), 30대(74.8%) 순이었습니다. 이 중 76.8%는 프랑스의 '팍스 제도'로 불리는 결혼제도를 도입한다면 저출산 문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민연대계약'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의 '팍스 제도'는 법적 구속력이 아니더라도 연인이나 커플이 자신이 원하는 의지대로 함께 거주하며 아이를 출산해 차별 없이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뜻합니다.
 
설문 참여자 중 95.5%는 한국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습니다. 주된 원인으로는 '경제적 부담 및 소득 양극화'(40.0%)를 꼽았습니다. '자녀 양육·교육에 대한 부담감'(26.9%)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화·가치 바꾸는 노력 병행"
 
1970년 출생아 수는 100만명에 달했지만, 지난해에는 24만9000명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합계출산율도 0.7 수준으로 떨어지며 각종 사회문제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김영미 저고위 부위원장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은 청년 입장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남성의 경우도 육아휴직 등을 통해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은 수요가 많지만, 노동시장의 환경과 문화는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IMF 당시 경제위기가 가족관계를 망가뜨렸다고 본다"며 "아이를 낳는 것보다 본인이 생존하는 것, 살아남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린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면 저출산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스펙·취업을 강조하는 한국과 달리 유럽은 배우자·파트너가 될 사람을 잘 만나서 친밀한 관계를 맺고 가족을 꾸리는 것에 대해 강조하는 문화가 있다"며 "가족은 물론, 학교와 사회에서도 배우자,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행복과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교육하고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출산 해결을 위한 정책적인 수단도 필요하겠지만, 문화나 가치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은 ‘적신호 인구, 청신호 정책으로 해법 찾기’를 주제로 강연을 열였다고 28일 밝혔다. 사진은 빈 신생아실 모습. (사진=뉴시스)
 
세종=이민우 기자 lmw383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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