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신대성 기자]
태영건설(009410)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돈을 대준 증권사들의 셈법이 복잡합니다. 태영건설이 내놓은 자구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정상화 과정에서 온전한 자금회수가 어려울 수 있는 데다, 추가적인 지원도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워크아웃 무산 가능성까지 제기되는데요. 이 경우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증권사들의 수익성 부담도 커질 전망입니다. 지급보증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서입니다.
증권업계 긴장…관련 익스포져 1조1600억
4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태영건설 관련 익스포져 규모는 금융업권 중에서 증권사들이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국신용평가는 증권업계의 태영건설 PF 익스포져를 1조1422억원으로 추정했습니다.
이중 태영건설에 직접 대출한 금액은 약 2200억원입니다. 태영건설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하나증권과 한양증권이 각각 300억원, 100억원을 빌려줬으며, 미래에셋증권, 현대차증권, 대신증권 등을 통해 대출을 받았습니다.
태영건설이 시공사로서 책임준공 확약을 한 사업장이거나 자금보충 또는 연대보증 등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사업장의 PF 대출잔액은 9239억원으로 추산되는데요. 이중에서도 브릿지론이 상당합니다. 한신평에 따르면 PF 잔액 중 25.28%에 해당하는 2336억원이 브릿지론이며 본PF는 5228억원, 부동산담보대출이 1675억원입니다.
문제는 워크아웃에 들어갈 경우 채무 조정은 물론이고 추가적인 자금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채권 일부가 주식 등으로 출자전환될 경우 온전히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익명의 운용업계 관계자는 “망가진 사업장이 있는 대주단들은 추가적인 지원자금이 필요할 수 있어 법정관리가 유리할지 워크아웃이 유리할지 지켜봐야 알 것 같다”면서 “채권단에서도 가급적이면 차입금 지원자금이 들어가지 않는 방향으로 구조를 짜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증권사들도 상황에 따라 대응 방향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아직 채권단 결정도 안났고 협의도 계속 진행 중인 상황이라 현업에서도 대응 방향을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이번에 나온 자구안도 반응이 영 좋지 못한데 뭔가 다른 대책을 내놔야 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사실 증권사들의 경우 태영건설 관련한 PF 규모가 그리 큰 편이 아니다”라며 “채권단 협의 등 경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은행 등 주요 대주들의 결정을 따라가는 분위기”라고 언급했습니다.
5일 주요 채권단이 모일 거란 소식이 전해졌지만 대다수 증권사들은 이와 관련한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추가 충당금 적립 불가피…증권업계 수익성 악화 우려
증권사별로 가장 많은 PF대출을 내준 곳은 KB증권으로 412억원 규모입니다. KB증권과 하나증권은 태영건설 본사 사옥을 담보로 유동화단기사채에도 자금을 댔습니다. KB증권이 에이블티와이제일차, 에이블티와이제이차를 통해 각각 1000억원(선순위), 250억원(중순위)의 신용공여를 제공했으며, 하나증권은 에이블티와이삼차를 통해 100억원(중순위), 200억원(후순위) 신용공여를 제공했습니다.
KB증권과 하나증권의 경우 빠른 자금회수를 위해선 워크아웃에 반대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KB증권과 하나증권 등은 1900억원을 대출하며 본사 사옥을 담보로 받았기 때문인데요. 태영건설 본사 사옥의 평가액은 약 2500억원 수준으로 담보권 실행시 중·후순위 대출도 변제에 무리가 없을 것이란 판단입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결정될 경우 PF에 들어간 증권사들의 수익성 악화도 예상됩니다. 충당금 적립으로 대손비용이 발생할 경우 순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한신평은 “태영건설 익스포져에 대해 건전성을 정상에서 고정으로 재분류할 경우, 충당금 적립 부담(부동산 PF 30% 충당금 적립 가정 시)은 대형 증권사의 최근 3개년 평균 당기순이익의 11% 수준”이라며 “일부 증권사의 경우 30%를 넘어서기도 해 업체별 이익창출력에 따라 수익성 저하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증권업계에선 한국투자증권과 태영건설이 공동으로 조성한 2800억원 규모의 펀드 만기 도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 펀드는 태영건설의 PF 차입금과 유동화증권 차환을 위해 태영건설과 한국투자증권이 각각 800억원, 2000억원씩 출자해 조성했는데요. 오는 3월이 만기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은 태영건설 소유인 루나엑스CC(경북 경주시 소재)를 담보로 자금을 지원했죠. 다만 만기 연장에 성공하더라도 태영건설 유동성 위기에 따른 충당금 설정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충당금은 고려해볼 사항이지만 만기가 3개월 남아 지켜봐야할 것 같다”며 “추후에 문제가 생기더라고 담보가 있어서 자금회수 우려는 적은 편”이라고 밝혔습니다.
시장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워크아웃 무산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자구안에서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이나 핵심 계열사인 SBS 지분매각 등이 빠지면서 워크아웃 무산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는데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회수율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면서 “워크아웃에 반대해 채권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일부 금융사들이 있을 수 있는데, 채권단에서 추가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여의도에 태영건설 본사. (사진=연합뉴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