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실무 책임자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기소된 지 5년 2개월여만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김현순·조승우·방윤섭 부장판사)는 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임 전 차장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재항고이유서 관련 검토 지시 △메르스 사태 관련 정부의 법적 책임과 대안 검토 지시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에 대한 사건 정보 수집 지시 △법원행정처 개입 사실 은폐 위한 허위 해명자료 작성 및 행사 △2015년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회의원 상대 제소 방안 검토 지시 등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혐의 벗기 위해 시간 소비…사회적 형벌 받아"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범죄 행위에 대해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고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부여한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국회의원과 청와대를 위해 이용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이라는 이념이 유명무실하게 됐다.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저하됐을 뿐 아니라 법원 구성원에게도 커다란 자괴감을 줬다"며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는 법관이 다시는 이 같은 전처를 밟지 않게 하기 위해 피고인에게 엄중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지목돼 오랜 기간 질타의 대상이 됐고, 유죄로 판명된 사실보다 몇 배 많은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 했던 사회적 형벌을 받았다”며 "이 사건 범죄 관련 5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구금돼 있으면서 자신의 과오에 대해 죄값을 일부 치렀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선고 직후 "선고 결과에 대해 한 마디 해달라", "법원 구성원들에게 할 말 없는가" 등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법원을 떠났습니다.
임 전 차장은 2012년 8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차장으로 근무하며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2018년 11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이던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당시 박근혜 정부에서 민감하게 생각하던 △일제 강제징용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등에 대해 개입했다고 봤습니다.
이밖에 △대내외 비판세력 탄압 △부당한 조직 보호 △비자금 조성 등 혐의도 받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에서 임 전 차장을 '사법행정권 남용의 핵심 책임자'로 규정하고 징역 7년을 구형했습니다. 반면 임 전 차장은 검찰의 주장에 대해 ‘신기루 같은 허상’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날 선고로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재판에 넘겨진 14명의 전·현직 법관의 1심 선고가 마무리 됐습니다. 임 전 차장은 그 가운데 세 번째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되었습니다.
앞서 일부라도 유죄 선고를 받은 이는 두 명뿐입니다.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2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2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