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정부가 시행 중인 '노동조합 회계공시 제도'에 찬성하며 윤석열 정부와 신경전에서 한발 물러섰습니다. 반면, 민주노총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는 '노조 탄압'이라며 회계공시를 거부하는 한편, 나홀로 투쟁에 나섰습니다.
금속노조는 조합원 18만3000여 명에 달합니다. 현대차·기아차·대우조선 등이 속한 금속노조는 민주노총(조합원 112만 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조직으로 꼽힙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정서 차이로 회계공시 제도에 대해 찬반 의견이 갈렸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금속노조 관계자는 "약간의 정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며 "금속노조는 이전에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회계공시 거부에 찬성했고, 민주노총을 압박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18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제80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회계공시 '백기투항' 민주노총
민주노총은 윤석열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회계공시 정책에 대해서 그간 단호한 거부 입장을 철회하고 수용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 등에 대한 투쟁은 이어갈 계획이지만, 회계공시만큼은 사실상 백기투항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19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제80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2024년 사업계획 안건 중 하나인 '회계공시거부'의 건은 재적 1002명 중 493표가 찬성했는데, 과반(502표)에 9표가 못 미쳐 거부안이 부결됐습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조 회계공시에 찬성했습니다. 2년 연속입니다.
노조 회계공시 제도는 조합원 1000명 이상인 노조가 회계를 공시해야만 조합원이 낸 조합비의 15%를 세액공제해주는 제도입니다. 정부가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고 조합원의 알권리를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지난해 10월 처음 도입했습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세액공제 상 불이익과 이로 인한 이탈을 우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민주노총은 "세액공제를 받지 못하는 데 대한 조합원들의 반발 등을 우려해 공시 참여를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의원대회에서 회계공시 참여 거부 안건이 부결되면서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은 회계공시를 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민주노총 소속 공시 대상 노조 331개 중 312개가 공시에 참여 중입니다.
민주노총 회계공시 표결을 앞두고 진행된 토론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습니다. 오세윤 네이버 지회장은 "회계공시 요구가 부당하다는 것은 알지만,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회계공시 결정을 유지해야 한다"며 "공시를 거부하면 정부의 의도대로 민주노총의 고립과 내부 분열이 초래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노조의 이번 회계공시 갈등을 두고는 노조가 투항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김성희 L-ESG평가 연구원장(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와 노조가 기싸움 비슷한 것을 하고 있는 상황인데, 아직 기싸움의 초반부인 만큼 노동조합의 회계공시를 여부를 두고는 노조가 한발 물러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금속노조가 지난 12일 회계 공시 거부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사진=표진수기자)
금속노조, 나홀로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
반면 허원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왜 노조에만 회계공시를 요구하느냐"며 "회계공시 요구는 노조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공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회계공시를 반대한 금속노조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 산하 지부와 지회 등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금속노조는 세액공제 혜택 대신 윤석열 정권에 대응하기 위한 투쟁을 선택했습니다. 금속노조는 20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금속노조 2024년 투쟁 선포식'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금속노조를 정조준하고 있는 만큼 투쟁 강도를 높히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금속노조는 "윤석열 정권의 노조 탄압이 2024년에는 금속노조를 정조준하고 있다"면서 "노동조합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침해하는 회계공시 강요부터 노사자율 원칙의 산물인 타임오프 개입까지 노조 무력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금속노조는 윤석열 정권이 자동차와 조선, 철강 업종을 중심으로 '타임오프' 감독을 확대한다는 계획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타임오프는 노조 전임자가 한 해 유급으로 근로 시간을 면제받는 제도입니다. 또한 조선 하청 노동자 파업이 촉발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거부한 것도 윤석열 정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노조 관계자는 "자동차, 철강 등의 업종은 중후장대에 해당하는 업종으로 금속노조 자체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화물연대본부와 건설노조에 이어 올해는 금속노조를 겨냥하고 탄압에 나서겠다는 정권 의도를 밝힌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