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55와 17 그리고 8…' 집권 3년 차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할 '숫자 키워드'입니다. 일종의 '총선 패배 청구서'인데요. 윤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사망사건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10번째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하더라도 표의 움직임에 따라 거부권이 무력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2대 국회에 들어가지 못한 국민의힘 현역 의원 55명과 거부권 무력화(197석)에 필요한 17명의 변심. 그리고 22대 국회 개원 이후 채상병 특검법이 재발의 됐을 때 여당 내 단 8명의 움직임이 향후 정국을 판가름할 것으로 보입니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되자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힘 내 불출마·낙천·낙선 55인 '불만' 표출?
3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채상병 특검법'이 최종 자구 검토를 거쳐 정부에 이송되면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법안을 공표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점은 국무회의가 열리는 오는 14일이 유력한데요. 거부권 행사에 따라 국회로 돌아올 채상병 특검법은 27~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입니다.
'채상병 특검법'을 국회에서 재의결하면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데, 21대 국회 구성상 재적의원 295명 전원(윤관석 민주당 의원 구속수감 제외)이 출석하면 197명의 찬성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국민의힘 의원은 총 113명으로, 전원 반대표를 던진다면 재의결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난 3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김건희 특검법' 재의결 부결 당시와는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재의결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는데요. 국민의힘 의원 113명 중 55명이 불출마 혹은 낙천·낙선해 곧 국회를 떠납니다. 때문에 여권에서는 공천과정에 불만을 가졌거나, 총선 패배에 대한 대통령 '책임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 낙선한 의원들이 본회의에 불출석할 경우에 따른 변수가 있는데요. 만약 국민의힘 의원 26명만 불축석한다면 재의결 정족수가 180명으로 낮아져 야권 표만으로도 재의결이 가능해지는 셈입니다.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이만희 상황실장 개표방송을 지켜보다가 자리를 떠나고 있다. (사진=뉴시스)
17표 이탈시 '통과'…일부서 '찬성' 기류
4·10 총선에서 '정권 심판'에 대한 민심이 명확하게 드러난 만큼 야권에서는 여권 내 이탈 표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도피성 출국'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면서 '김건희 특검법' 표결 당시와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현재 범야권 의석은 180석으로 분류되는데, 범여권에서 17표의 이탈 표가 발생하면 '채상병 특검법' 재의결 조건을 충족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일 '채상병 특검법' 표결 당시 여권에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또 이번 표결 때는 퇴장했지만 같은 당 안철수 의원은 이미 '채상병 특검법'에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
여기에 이탈 표 관리를 위해서는 차기 원내대표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계속해서 '친윤계'(친윤석열계) 의원이 차기 원내대표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어 '반대 기류'가 읽힙니다.
다만 21대 국회에서 17표의 이탈표가 발생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국민의힘 총선 백서 TF(테스크포스) 단장을 맡고 있는 조정훈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우리 젊은이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진상규명 과정을 우리가 다시 복기하면서 조금 더 국민 눈높이에 맞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긍정적 의견을 내비쳤지만 야당의 강행은 '반칙'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여당 내 최다선인 조경태 의원과 민주당 탈당 인사인 이상민 의원도 특검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출해 왔지만, 실제 표결에서는 퇴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영향력 커지는 '쇄신파'…이탈표 8명 가능성
결국 21대 국회의 벽을 넘기지 못한 채, 22대 국회에서 범야권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이 재발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에게 거부권 포기를 요구하는 한편, 국민의힘의 양심 있는 의원들에게 호소한다"며 "21대 국회가 결자해지해 달라"고 촉구했는데요.
개혁신당을 포함한 22대 국회 범야권 192명은 채상병 특검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당에서 8표의 이탈표만 발생해도 거부권 무력화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22대 국회에 입성하는 김재섭 국민의힘 당선인은 "여당이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특검법에 처리에 대한 토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한지아 국민의힘 당선인도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또 8명의 의사결정에 따라 거부권 무력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당내 비주류·쇄신파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요. 현재 특검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조경태·안철수 의원도 22대 국회에서는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