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발의→직회부→거부권…극단적 대결주의

대선 후 여소야대 국회로 전환…야 독주에 대통령 거부권 남발

입력 : 2024-05-23 오후 5:37:52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추가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여야의 극단적 대결주의 정치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1대 국회가 오는 29일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의원들의 입법안 졸속 발의, 본회의 직회부 제도를 활용한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 또 이를 막기 위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남발 등 이른바 3종 세트가 역대 최악의 국회를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020년 5월30일 문을 연 21대 국회는 전반기만 해도 여대야소 구도였는데요. 이 때문에 집권여당이었던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와 국무회의 의결까지 일사천리로 입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패하면서 민주당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했고, 반대로 대선에서 승리한 국민의힘은 야당에서 여당이 되면서 21대 국회 후반기는 여소야대 구도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국회 후반기는 야당의 입법안 단독 처리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국회 재표결 후 폐기가 무려 9번이나 반복됐습니다. 윤 대통령이 10번째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인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도 현재로선 폐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야의 협치가 실종된 상태로 21대 국회가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잇따른 졸속·부실 입법…묻지마 '물량공세'
 
21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를 만든 배경에는 의원들의 졸속 입법안 발의가 한몫했습니다. 법안의 질적 수준에 대한 고민 없이 '물량 공세'에 치중하려는 의원이 적지 않다 보니 부실 입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전 국회에서 임기 만료 폐기된 법안을 그대로 가져와 문구만 조금 바꾼 뒤 발의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특히 법안 제출 실적을 확보하기 위해 공동발의 제도를 이용한 사례가 많은데,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중 최소 요건인 의원 10명의 동의만 얻어낸 법안이 대략 30%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국민 관심도가 높거나 정치적으로 이슈가 있는 사안에 대한 법안 발의도 우후죽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예를 들어 2020년 코로나19가 대규모 유행했을 때 감염병 예방법, 재난 관련 의료비 지원·안전 관리법, 소상공인지원법 등 이른바 '코로나19 대응 법안'이 속출했습니다. 또 어느 한 의원이 법안을 무더기로 발의하거나 제출했다가 거둬들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총 13건의 법안을 발의했다가 6~14일 사이에 철회했습니다. 각종 이슈 때마다 철저한 검토 없이 법안을 대거 쏟아낸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차 경제이슈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입법권 대 행정권 충돌…22대 국회도 다르지 않다
 
21대 국회에선 유독 국회의 입법권과 정부의 행정권이 충돌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거대 야당 주도로 쟁점 법안이 본회의로 직회부된 뒤 국회를 통과하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재투표에 따른 법안 폐기로 이를 무력화하는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폐기된 법안들의 공통점은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부터 여야의 극심한 대립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수적 우위를 앞세운 야당은 상임위에서 이들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했고, 여당이 위원장을 차지한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어 본회의로 직회부했습니다. 민주당은 2022년 12월2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양곡관리법을 처리하며 처음으로 본회의 직회부를 법사위 패싱용으로 활용했습니다. 결국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10개 법안 중 6개 법안(양곡관리법·간호법·노란봉투법·방송 3법)이 직회부된 법안입니다.
 
국회에서 넘어온 모든 법안에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러한 법안만 10개에 이르렀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양곡관리법(2023년 4월4일), 간호법(5월16일), 노란봉투법·방송 3법(12월1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겁법(2024년 1월5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1월30일), 채상병 특검법(5월21일) 등 총 10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이후 최다 기록입니다.
 
이런 기조는 22대 국회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이미 지난달 18일 거부권 행사 이후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돼 폐기된 양곡관리법의 일부 문구를 수정한 뒤 재발의해 직회부한 바 있습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22대 국회도 21대 국회와 유사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다만 이 평론가는 "이러한 기조가 22대 국회에서 바뀌려면 윤 대통령이 바뀌는 방법밖에는 없다"며 "여야 협치를 시도해서 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 처리를 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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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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