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 기술에 각국이 힘을 쏟고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붐으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도래했음에도 미세화 공정 기술 한계가 걸림돌입니다. 패키징은 반도체 칩을 적층해 이를 해결해줍니다. 그래서 패키징 강국이 곧 새롭게 재편되는 반도체 공급망도 제패할 구도입니다. 한국이 극복해야 할 파운드리, 시스템 등 비메모리 과제도 결국 패키징이 열쇠로 꼽힙니다.
나노기술 한계 뚫은 패키징
29일 정부 및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한국의 비메모리는 비중 면에서 사실상 삼성전자의 파운드리가 지배적입니다. 그런 삼성 파운드리는 TSMC에 뒤처지는 중입니다. 3나노 선행 개발에도 점유율은 되레 후퇴했습니다. 원인은 패키징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목합니다. 삼성전자도 뒤늦게 패키징 기술 내재화를 위한 투자 확대 등 대응에 나섰습니다.
반도체 패키징은 후공정에 속합니다. 그간 종합반도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은 이 패키징을 국내외 전문업체(OSAT)에 맡겨왔습니다. 주로 메모리 관련 후공정으로 기술 난이도가 높지 않아 인건비가 저렴하거나 인력이 풍부한 중국, 말레이시아 등에서 수행했습니다.
그러다 반도체 나노기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첨단 패키징 기술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값싼 외주로는 만족할 품질을 얻지 못할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나노기술 경쟁이 패키징 경쟁으로 옮겨간 만큼 중요성도 전에 비해 괄목해졌습니다. 생성형AI를 구현할 모바일 어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AI칩 설계는 애플, 엔비디아, AMD 등이 하고 이들은 파운드리에 제조를 맡깁니다. 그런데 3나노 파운드리에 집중했던 삼성전자와 달리 고객사들은 TSMC의 패키징 기술을 높이 샀습니다. 그런 결과가 TSMC의 점유율 선두 고착화입니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로 치고 나가는 구도 역시 메모리칩을 적층한 패키징이 비결입니다.
삼성전자와 TSMC 파운드리는 패키징 대결로 번졌고, 이는 각국의 반도체 생태계 경쟁으로도 묘사됩니다. TSMC가 대만의 막강한 후공정 생태계 지원을 받는 반면 삼성전자는 고립됐습니다. 국내 패키징 OSAT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5% 수준에 그칩니다. 세계 25대 OAST 기업에 포함된 한국업체는 2022년 기준 하나마이크론, SFA세미콘, 네패스, LB세미콘 등 4곳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국내 OSAT 기업들은 메모리에 치중된 전방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의존해왔고 각사의 내재화 전략과 충돌해왔습니다. 메모리 후공정 자체가 비메모리의 그것보다 어렵지 않고 비용효율을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직접 수행해야 필요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내수시장이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AI 시장 확대로 비메모리 산업이 중요해졌습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미 2022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비중이 22.6%이고, 비메모리 중 시스템반도체가 60%로 메모리의 3배였습니다. 비메모리는 메모리보다 다품종 소량생산 특성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전문업체 역할이 커졌습니다. 이에 종합반도체(IDM)도 외주화를 늘려가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TSMC에 밀렸던 패인이 패키징에 있다는 점을 자각한 삼성전자의 경우 내재화 투자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OSAT들이 수주일감 확대 와중에도 불안감을 느끼는 대목입니다.
“전문업체 성장하기 어려운 생태계”
우리 정부는 반도체 업계의 수요를 파악하고 패키징 지원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26일 총 사업비 2744억원 규모 첨단패키징 연구개발(R&D)사업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됐습니다. 2025년부터 2031년까지 지원하는 예산 규모입니다. 이는 비메모리 육성이 골자인 메가클러스터 정책과 연계됩니다. 정부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강점을 기반으로 팹리스를 육성하겠단 방침입니다. 이를 통해 현재 3%인 시스템 반도체 점유율을 2030년 10%까지 올리기로 했습니다. 메가클러스터는 수도권 일대에 19개 생산팹과 2개 연구팹을 짓는 게 골자입니다. 비메모리 밸류체인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중장기 대책을 내놨습니다. 그 속에 특히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투자를 국내 집중하는 게 두드러집니다. 삼성전자는 평택에 120조원 시스템 및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투자를 실시 중입니다. 또 기존 화성 파운드리를 가동하고 있는 것에 더해 용인에 360조원을 투입, 신규 파운드리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이를 보면 한국의 비메모리 산업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중심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파운드리는 근래 TSMC와의 경쟁에서 패키징 기술 대결로 비화됐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비메모리 육성 정책 성패도 패키징이 좌우할 전망입니다. 이 가운데 업계 및 전문가들은 패키징 생태계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후공정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양사는 고정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주화를 늘리고 있지만 한정된 납품 업체 수요를 맞추기 위해 후공정 업체간 패키징 경쟁도 치열해졌다”고 전했습니다. 또다른 관계자는 “패키징 신규 투자도 확대하면서 납품 경쟁에서도 신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단가 인하에 신경쓸 수밖에 없다”며 “국내 후공정 업체들이 성장하기 어려운 생태계적 근본 한계”라고 지목했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대만과 같은 균형 있는 반도체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며 “대만은 각 반도체 분야가 균형있게 발전해 파운드리와 패키징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력과 위상을 확보해 애플, 엔비디아, AMD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반면 우리나라 패키징 전문업체는 규모가 영세하고 산업구조가 메모리에 편중돼 세계 10대 OSAT, 패키징 및 테스트 기업에 국내 기업이 전무하다”면서 “국내 OAST 업체들은 규모가 작고, 기술력이 떨어지며, 파운드리 및 IDM의 첨단 패키징 시장 진입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비 프리미엄 제품은 외주 후공정업체에 의존하고 있지만, 앞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높이려면 팹리스·파운드리·패키징·테스트 기업 간 공급망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