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가 배임죄 및 금산분리를 풀려는 정부의 규제완화 노선에 경고음을 울립니다. 금산결합이 산업자본의 도덕적 해이를 키워 시스템 리스크(부실의 사회전이)를 유발한다는 전문가들 경고대로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부는 5000억원 넘게 공적자금을 지원하며 값비싼 교훈을 얻어야 했습니다.
금산결합 티메프, 지네발 확장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30일 “산업자본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윤을 추구한다. 금융기관 부실은 금융 소비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길 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위험이 전이되는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를 야기한다”며 “따라서 금산복합기업집단은 산업자본의 도덕적 해이 유인을 가지게 된다. 성공하면 기업이 이익을 가져가고, 실패하면 시스템 리스크를 야기해 정부가 결국 국민 세금으로 구제하는 일들이 발생하는 악순환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티몬, 위메프가 속한 큐텐그룹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삼성, 현대차 등 금산복합기업집단은 아니지만 사업 유형이 금산결합 형태입니다. 이커머스 플랫폼인 양사는 산업자본이지만 PG(전자지급결제대행)업을 해왔습니다. 티몬(2016년)과 위메프(2019년)는 PG로 등록해 그간 금융과 이커머스를 병행해왔습니다. 소비자가 카드로 결제하면 그 정보가 PG로 전달되고 티몬, 위메프를 거쳐 판매자가 물품을 배송하게 됩니다. PG는 플랫폼 입점사가 판매한 대금을 정산일까지 보관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산금 미지급 사태는 거래대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진 상태입니다.
큐텐그룹이 위험을 감수하고 무리한 확장을 시도했던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자본이 부실한 큐텐이 자본잠식 상태인 티몬과 위메프를 인수했고 인터파크, AK몰까지 추가 흡수해 몸집을 키웠습니다. 인수대금을 직접 조달할 능력이 없었던 큐텐은 주식스왑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자회사인 큐익스플레스를 나스닥 상장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분가치 상승을 담보로 스왑한 것입니다. 한쪽에선 상품권을 8%까지 할인판매하는 등 비정상적 현금화 수법도 포착됐습니다. 결국 나스닥 상장 준비 작업이 탈 난 게 사태 원인으로 지목됐고 검찰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고객 돈이 유용될 가능성은 보험사나 카드사에게도 줄곧 제기돼온 문제입니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보험사나 카드사의 자본 적정성을 관리합니다. 하지만 ‘삼성생명법'(보험업법)이 21대 국회를 끝으로 폐기되는 등 규제는 현실적 문제로 막혔습니다. PG도 법상(전자금융감독규정) 자본충실 의무가 있지만 티몬, 위메프는 2022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였습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양사와 경영개선협약(MOU)을 체결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양사는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거래를 지속해 당국이 결국 방관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앞서 정부는 2020년 디지털금융 종합혁신방안을 발표해 이커머스를 육성하면서 규제도 낮췄습니다. 정부가 공시 기준을 완화한 가운데 티몬은 감사보고서를 미제출하는 등 규제 공백이 원인이란 시각도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침을 고수해온 정부 기조에도 찬물을 끼얹습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규제 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금융위는 관련 논의를 주재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카드사나 보험사 등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이란 논란을 사기도 했습니다. 최근 김병환 차기 금융위원장 후보도 “금산분리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인사청문회에서 밝혔습니다. 재계에서도 삼성, 현대차 등 금산결합집단과 달리 금융사 보유가 불가한 지주회사 집단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동조했습니다.
박상인 교수는 “금산분리 완화는 비은행 산업에 독이 된다”며 “카카오 사례를 보면, 모바일 사업에 성공해 지배적 사업자가 된 후 플랫폼 기능에 대한 혁신보다 지배적 위치를 레버리지해 지네발식 확장을 시도했다”며 “그 결과 플랫폼 경쟁이나 AI 도입 같은 것도 뒤졌을 뿐만 아니라 지네발식 확장 부문의 중소기업들도 어려워져 사회적 갈등만 야기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금산분리 완화에 대한 경고가 이번 사태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며 반면교사를 강조했습니다.
배임죄 없다면 피해복구도 어려워
“현행 유지보다 폐지가 낫다”고 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배임죄 폐기론도 무색하게, 구영배 큐텐 대표는 사기, 횡령, 배임죄 혐의로 소비자들로부터 고소·고발 당했습니다. 금감원장 발언을 필두로 재계는 “배임죄가 소송을 남발해 과잉처벌로 이어진다”며 폐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규제가 없다면 거리낌 없이 자행된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이번 사태는 반론에 힘을 실어줍니다. 배임죄 규정이 없다면 이런 사건 유형에 대한 법적 피해구제(민사)나 사전방지 또는 정화작용(형사)이 어렵단 지적입니다.
구 대표와 티몬·위메프 대표이사 및 재무이사 등을 고소한 고소인 측은 “정산대금을 줄 수 없어도 쇼핑몰을 운영한 건 폰지사기 행태”라며 “큐익스플레스를 키우기 위해 불법적 자금 유용과 방만 경영을 한 부분은 배임, 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쪽에선 피해 복구를 위한 소비자단체 민사 소송도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판결까지 장시간이 소요되고 피해금보다 소송비용이 더 클 수 있다고 걱정합니다. 민사 다툼에선 배임 규정이 책임 소재를 따져 피해 복구할 법적 근거가 되나, 배임죄 폐지론과는 충돌합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한다”며 “(정산까지)두 달 정도의 시간이 벌어지다 보니 폰지사기, 스턴사기를 벌였을 의혹이 제기된다. 창업자인 구영배 대표가 티몬에 있는 현금을 인출하고 유출했을 의혹이 가장 큰 문제다. 증권사처럼 고객 돈을 은행에 예탁하던지 신세계백화점처럼 이틀 안에 지급하는 방법으로 바꿔야 한다. 철저하게 관리해야만 이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