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이달 말 코로나19 확진자가 작년 최고 유행 수준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정부의 늑장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당장 민족 대이동인 추석을 앞두고 제2의 팬데믹 도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요. 정부는 발열 클리닉을 지정하고 공공병원 중심으로 응급병상을 확충하겠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의대 증원으로 이미 정부와 틀어질 대로 틀어진 의료계가 정책에 비협조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지위, 코로나 유행 예측 실패 질타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중앙응급의료센터(NEDIS)를 통해 산출한 2024년 월별 응급실 내원 코로나 환자 수' 자료에 따르면 응급실에 내원한 코로나 환자 수는 △2월 1만5386명 △3월 1만596명 △4월 4837명 △5월 2155명 △6월 2277명 △7월 1만3495명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6월에서 7월까지 한 달 사이 6배로 급증한 겁니다.
이날 열린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는 보건당국의 코로나 유행 예측 실패와 먹는 치료제 도입, 비축량 부족 사태에 대한 보건복지위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최근 2년간 여름철 코로나 유행 추세를 볼 때, 올해 환자 증가 예상이 충분히 가능했던 만큼 늑장 대처라는 지적입니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은 "코로나 치료제 구매 예산이 지난해 본예산은 3800억원, 집행은 예비비를 확보해 집행액이 8100억원에 가까운데 올해 예산은 1700억원"이라며 "전문가가 모인 질병관리청에서는 이러한 부분은 분명히 예측했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와 관련해 15일부터 이번 주까지 6만명분, 다음 주까지 14만명분이 추가로 들어올 계획이라고 밝혔는데요. 지난 16일 대통령실이 부랴부랴 치료제 수요 급증에 대응해 긴급 예비비를 확보하고 "26만명분의 치료제 공급 계약을 체결 중"이라고 밝힌 데 대한 공급계획입니다.
코로나 입원환자의 급증으로 응급실도 비상이 걸렸는데요. 응급실 환자는 의사 집단행동 이후 줄었다가 현재 평시 이상으로 늘어난 상태로, 상당수는 코로나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응급실 환자의 10% 정도로 추산됩니다.
정부는 지자체와 협의해 코로나 환자가 집중되는 야간과 주말에 '발열 클리닉'을 운영할 계획인데요. 경증일 경우 발열 클리닉으로 이송시켜 응급실로의 환자 집중을 막는다는 설명입니다. 병상이 부족할 경우 전담병원 지정, 국립중앙의료원의 모듈형 병상 등도 단계적으로 고려할 방침입니다.
정통령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의사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추석 연휴 등에는 지자체별로 병원들이 협조해 환자를 진료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발열 클리닉과 관련한 지자체별 구체적 계획은 오는 22일 행정안전부 장관이 주재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입니다.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 왼쪽부터 지영미 질병관리청장, 박민수 제2차관, 조규홍 복지부 장관, 이기일 제1차관,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사진=뉴시스)
의료계 이미 탈진…협조 가능성 물음표
정부 발표에 대한 의료 현장 반응은 떨떠름합니다. 서울 종합병원 관계자는 "현재 서울권 병원 전공의 공백은 90% 정도"라며 "사명감을 갖고 버티던 교수들도 무너지기 직전"이라고 귀띔했습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도 "현재 대학병원 교수들이 하루 진료를 15시간씩 보고 있다"며 사실상 탈진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 거점병원, 감염병 전담병원 등 지정도 쉽지 않을 거란 전망입니다. 첫 번째 코로나 팬데믹 당시 병원들은 선별진료소를 운영한 바 있는데요. 병원 입장에서는 호흡기 환자가 다른 환자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기지 않도록 동선을 따로 짜고 분리해야 하다 보니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당시 기존 인력으로 감당이 안 되자 서울 시내 병원에서는 계약직 의사를 별도로 채용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의대증원 확대로 반발이 심해 채용이 쉽지 않을 거란 얘기가 나옵니다.
무엇보다 의정갈등 이후 전공의 공백으로 서울 시내 종합병원의 진료 수익이 줄어 병원 운영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인데요. 한 달 매출이 반토막인 경우도 부지기수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병원 적자가 심한 상황에서 매년 진행하던 하반기 간호사 채용마저 불투명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감염병 전담 인력을 추가 채용하기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예전보다 정부가 적극 지원하지는 않는 분위기인 것 같다는 현장 목소리도 있습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예전 팬데믹 당시에는 정부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통해 업체와 계약해 에크모, 인공호흡기 등 장비를 대여해 주고 의료인 단체를 통해 간호 인력 파견 등도 적극 지원해 줬다"며 "추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밀어주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팬데믹 당시 운영되던 중수본은 현재 의사 집단행동 대응 본부로 바뀐 상태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는 데는 코로나가 지난해 8월 감염병 등급이 4급으로 하향 조정된 영향도 있는데요. 복지부 관계자는 "아직 감염병 등급 상향에 대한 검토는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20일 경남 함안군 칠서면 칠서초등학교 이룡분교장에서 방역전문업체 직원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