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패전 79주년을 맞은 15일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이 도쿄에 있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한 후 신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정부의 역사 인식이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정부가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을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해 여러 역사 관련 기관 책임자로 임명했죠.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일본이 아직 해결하지 않고 있는 과거 청산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하라 미노루 일본 방위상이 지난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습니다. 일본 해상자위대 간부후보생들이 견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일도 얼마 전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는 아시아 침략에 앞장선 일본 군국주의 전범들을 합사한 곳입니다. 아사히신문은 "옛 일본군과 결별한 것 같던 자위대가 여전히 긴밀한 관련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잇달아 확인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국방부는 이 사건 때문에 주한 일본대사관 자위대 주재관을 불러서 항의했습니다. 말로 한번 항의한 것으로 충분한가요? 아니죠. 한·일 군사협력이 너무 나가는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에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문재인정부를 비롯해 과거 정부 시절에도 한·일 간에 군사협력은 했습니다. 가령 북한이 쏜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넘어갔습니다. 일본이 불안해하겠죠. 한국과 일본은 미사일 비행 정보를 공동으로 탐지하고 교환했습니다.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는 해상 수색과 구조 훈련을 함께 했습니다. 선박 사고가 났을 때 두 나라가 힘을 합쳐 구조하는 인도적 활동이죠.
이런 협력은 지금도 필요합니다. 이웃 나라 일본과 경제와 문화, 사회를 비롯해 다양하게 협력해야죠.
윤석열정부가 한일 군사협력 성격을 크게 바꿨는데요. 동해와 제주도 남방 해상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이 연합 해상훈련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미국 항공모함과 한국 일본 전투 함정, 항공기가 여럿 참여합니다. 규모가 매우 큽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연합훈련을 오래전부터 실시했습니다. 북한 위협에 당연히 철저하게 대비해야죠.
미국과 달리 일본은 한국과 동맹 관계가 아닌데요. 그런데도 한국과 일본이 가상 적을 함께 설정하고 잠수함 추적 등 다양한 전투 훈련을 벌이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들어 한국이 일본과 함께 하는 훈련 내용은 군사동맹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지난 6월 28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열린 한미일 첫 다영역 연합훈련 '프리덤 에지'에서 슈퍼호넷이 이륙하고 있다. 프리덤 에지는 해상, 수중, 공중, 사이버 등 다영역에서 실시되는 정례 훈련이다. 한미연합훈련인 '프리덤 실드'와 미일연합훈련인 '킨 에지'를 합성해 만든 명칭이다. (사진=뉴시스)
연합 해상훈련 장소도 미묘합니다. 한국 국방부는 '제주도 남방 공해상'이라고 발표하는데, 미국과 일본은 '동중국해(EAST CHINA SEA)'에서 훈련한다고 발표합니다. 동중국해는 북한 잠수함이 돌아다닌다기보다는 중국 해군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가깝죠. 그래서 일본 언론들은 한·미·일 연합 해상훈련을 두고 일본 방위성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중국을 염두에 두고 3개국이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도합니다.
일본은 방위백서를 통해 중국이 자기 나라에 첫 번째 안보 위협이라고 적어놓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북한이 주된 안보 위협이죠. 한국은 중국을 군사적으로 적대시하지 않았으며, 중국도 한국을 군사적으로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중국을 첫 번째 안보 위협이라고 적시하는 일본과 우리가 연합해서, 그것도 민감한 장소에서 대대적으로 군사훈련을 한다면 어떤 효과가 생길까요? 중국이 자기네를 겨냥한 적대 활동이라고 경계하기 마련이죠. 러시아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에 긴장과 갈등이 높아집니다.
일본은 한국군을 활용해 중국을 더욱 강하게 견제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안보 목적을 달성하겠죠. 일본에 유리한 구도입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한국과 군사협력을 늘리고 싶어 했습니다.
한국에도 이득이 될까요? 한국은 북한 위협을 억제하는 게 안보 목표인데요. 그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엉뚱하게 제3의 다른 나라와 관계가 악화되고, 안보 부담이 되레 늘어날 수 있습니다. 국제정치 용어로 '연루의 위험'이라고 부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관계가 악화되는 문제점을 이야기했는데요. 문제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군사협력을 늘리다 보면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커집니다. 국가가 국제무대에서 군사력을 움직일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설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정복하겠다고 침략하겠느냐? 그럴 리는 없다고 어떤 분은 주장합니다. 저도 일본이 조만간 다시 침략해오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에 일본이 부당하게 개입할 가능성은 적극적으로 경계해야 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외교안보 분야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를 냈습니다. 이 책을 보면 일본이 한반도 문제에 수시로 개입하고, 한국 뜻에 반해서 미국을 움직여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고 한 사례가 많습니다. 심지어 평창 동계올림픽 때 올림픽 때문에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하면 안 된다고 일본이 주장하기까지 해요. 문 전 대통령은 내정간섭에 가까운 행위였다고 회고록에서 밝혔죠.
일본은 북쪽 지방 섬들을 놓고 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본과 러시아가 알아서 할 문제죠. 우리는 그런 문제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다릅니다. 끊임없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 영향력을 넓히려고 해왔음을 우리가 알아둬야 합니다.
한·일 군사협력을 동맹에 가까운 수준으로 진행하는데 국회가 이 문제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국방부와 외교부가 한일 군사협력 이유와 실태, 장단기 구상을 국회에 구체적으로 보고해야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좋은 이웃이 되도록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군사협력은 민감한 영역이죠. 과거 여러 정부에서 한일 군사협력 수위를 조절했던 데 이유가 있습니다. 정세가 바뀌었다면 정세 판단을 바꾸는 이유를 정부가 국민과 국회에 알리고 토론을 요청해야 합니다. 우리 국익이 손상되지 않도록 문제를 신중히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