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의 K-국방)해마다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선진국형 맞나?

국군의 날 서울 도심서 올해도 육해공 4000여명
100억 예산 들여 안보 실효성, 국가 이미지 논란
북한 중국 러시아 권위주의 국가 따르는 모양새
관광객도 사랑하는 의장대 전문화, 미국 참고할 만

입력 : 2024-09-20 오전 6:00:00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을 앞둔 지난 2023년 9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방부가 10월1일 국군의 날에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실시합니다. 지난해에 이어 연속 두 해째입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 미군, 향토예비군까지 4000여 명이 숙영하면서 연습하고 무대를 설치하면 1회 행사 예산만 100억원이 듭니다. 비용만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은 민주화 이후 다른 서방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군사 퍼레이드를 축소하거나 중단해왔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이것을 되살리는데요. 합리적일까요?
 
군사 퍼레이드는 나라별로 정치, 문화적 배경을 반영해 다릅니다.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가 정권의 권위를 강화하고, 군사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군사 퍼레이드를 자주 활용합니다.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행사를 자제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권위주의 국가, 군대는 당의 도구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군사 퍼레이드를 활발하게 실시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일가의 지도력을 찬양하고 군대를 중심으로 민심을 결집하는 선군 정치 도구로 이 행사를 활용했습니다. 최근에는 핵과 미사일을 과시해 국제 사회에서 존재감을 인정받으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중국도 공산당의 정치적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 형식을 활용합니다. 중국은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첫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열었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과 내전에서 승리하고 대륙에 새로운 국가가 탄생함을 안팎에 선포했습니다. 마오쩌둥 주석이 천안문 성루에서 군대를 사열하며 중화인민공화국 창립을 선언한 연설이 유명한데요. 이후 중국은 매년 국경절에 군사 퍼레이드를 열어, 사회주의 국가의 군사적 성과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1945년 6월24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나치 독일을 물리친 소련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첫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열었습니다. 이때 소련군은 노획한 독일군 군기를 지도부 앞에 무더기로 던지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소련의 승리를 극적으로 표현했죠.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군사 퍼레이드를 축소하거나 중단했습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집권기(1991~1999)에는 정치 경제 위기 때문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일 여력이 없었습니다. 승전 기념일 행사를 작게 열거나 생략했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집권 이후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재개했습니다. 특히 2008년부터 중무기와 첨단 무기를 대거 등장시켰죠. 군사력을 과시해 강국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죠.
 
권위주의 국가들은 국민을 결속시키고 정권의 강력함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군사 퍼레이드를  많이 활용합니다. 공산주의에서 군대는 당의 도구이며, 당은 정치 조직입니다. 군대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대한 부담이 없죠.
 
서방 민주주의 국가, 군사 퍼레이드 축소 경향
 
미국, 영국, 독일 등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좀처럼 열지 않습니다. 대신에 전쟁 희생자와 참전 용사를 추모하는 행사를 통해 군인의 희생을 기리고 군대에 대한 존중감을 표현하죠. 이것은 군대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지 않고, 군의 정치 중립성을 유지하겠다는 문화적 배경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하지 않고, 의장대 퍼레이드를 실시합니다. 대표적으로 워싱턴 D.C.에 주둔하는 미 육군 3사단(The Old Guard)은 군사 의장대와 기념행사를 주도하는 부대인데요. 알링턴 국립묘지에서의 경비 임무와 각종 기념 의식을 전문적으로 수행합니다. 특히 무명용사 묘역에서 경비병 교대식을 엄숙하고 정교하게 진행해, 많은 관광객한테 사랑받고 있습니다. 미군은 군인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며 시민과 연대를 튼튼히 하는 데 의장대 활동의 초점을 맞춥니다. 정치적 목적은 배제합니다.
 
프랑스는 서방 국가 중 드물게,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실시합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 반란군이 바스티유 감옥을 부쉈던 바스티유 데이(7월14일)에 행사를 여는데요. 규모가 크고 외국 정상도 많이 초대합니다. 프랑스 군대가 '자유 평등 박애' 라는 공화국 정신을 수호한다는 점을 내세우는 동시에, 프랑스가 국제정치 무대에서 강국 위상을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죠.
 
러시아 군인들이 지난 2020년 6월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제75회 전승기념일 군사퍼레이드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한국, 문민화 이후 '국론 결집용 군대 활용' 지양
 
한국에서는 정부 수립 시기부터 1970~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군사 퍼레이드를 대대적으로 개최했습니다. 국군의 날(10월1일)은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중요한 행사로 꼽혔습니다.
 
1988년 노태우정부 이래 한국은 민주화에 들어섭니다. 그 이후 역대 정부는 군사 퍼레이드를 축소하거나 중단했습니다. 이른바 국론을 결집한다고 군대를 내세울 필요를 더 느끼지 않았죠. 단순히 군사 강국이 아니라, 평화와 협력을 중시하며 경제와 과학기술, 문화가 강력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게 됐죠. K팝, K음식, K과학, K기술, K직장인 등 갖가지 K시리즈가 이런 흐름을 타고 등장했습니다.
 
문재인정부는 국군의 날에 전투 훈련과 기념식을 결합하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2021년 국군의 날을 보면, 경북 포항 도구 해변에서 해병대가 해공군과 육군 지원을 받아 상륙 훈련을 하고, '상륙 임무 완수'를 대통령한테 보고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죠. 그밖에 2017년 평택 2함대 사령부, 2018년 서울 전쟁기념관, 2019년 대구 공군기지, 2020년 이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훈련 겸 국군의 날 행사를 했죠. 육해공군과 해병대가 해마다 돌아가면서 준비했습니다.
  
윤석열정부의 군사 퍼레이드 재개
 
윤석열정부는 두 해 연속으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서울 도심에서 개최하고 있습니다. 국방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외 안보 상황을 고려하여 '강한 국군'으로서 압도적인 국방력을 과시"하겠다고 설명합니다. "한층 더 강화된 한미동맹과 글로벌 군사협력,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하는 '정예 선진 강군'의 능력·태세·의지를 현시함으로써, '튼튼한 안보', '강한 국방'을 국민이 체감"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군대의 존재와 임무 준비 태세를 시민에게 알리고 지지를 얻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상징 행사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기획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도심 군사 퍼레이드 방식은 의문이 듭니다. 첫째로, 북한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 스타일을 본받는 모양새가 좀 그러네요. 과거 군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는 느낌도 줍니다. 국가 이미지 전략 차원, 시민사회와 군대의 바람직한 관계 등을 고려할 때 투박합니다.
 
둘째로, 한국군은 미국 전문기관 글로벌 파이어 파워(GFP) 기준으로 2024년 재래식 군사력 세계 5위(북한은 36위)이며 미국과 연합 방위태세도 갖추고 있습니다. 굳이 과시하지 않아도 우리 실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셋째로, 1회 보여주기 행사에 100억원씩 예산을 쓰는 건 지나칩니다. 그 예산을 실전 훈련과 다른 전력 보강에 쓰는 게 낫죠. 장병들한테 오와 열을 맞추는 시가행진을 장기간 연습시키는 것도 장병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국가 이미지와 민군 관계, 대북 억제, 비용, 장병 사기 등을 두루 고려해서 대안을 연구해나가면 좋겠습니다.
 
■필자 소개 / 박창식 / 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습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와 소통, 말과 글로 행복해지는 기술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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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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