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수빈 기자] 최근 ‘인공지능(AI) 거품론’과 ‘반도체 겨울론’ 등 반도체 사이클이 고점에 근접했다는 진단이 연이어 나오면서 반도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부진 가능성이 반도체 업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4분기 제조업 체감경기마저 하향 조정됐는데요. 또 메모리 반도체 D램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스마트폰과 PC의 수요까지 부진한 상황입니다. 이에 증권가에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까지 하향 조정하는 실정입니다.
지난 7월 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시스)
올해 4분기 반도체 업황 '흐림'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제조기업 2252곳을 대상으로 ‘2024년 4분기 제조업 경기전망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직전 분기(89) 대비 4포인트 하락한 ‘85’로 집계됐습니다. BSI는 100 이상일 경우 해당 분기의 경기를 이전 분기보다 긍정적으로 본 기업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100 이하일 경우 반대로 해석됩니다.
전 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내수(85)와 수출(86) 모두 기준치 100을 밑돌았는데요. 특히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BSI 지수 낙폭이 컸습니다. 중소기업은 85로 전분기 대비 2p 하락에 그쳤지만, 대기업(86)과 중견기업(84)은 각각 12p, 13p 하락했습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화장품(110)과 의료정밀(109) 업종이 기준치인 100을 넘어서면서 체감경기가 개선될 것으로 점쳐집니다. 반면 반도체(94)와 전기장비(97) 업종은 100 이하로 하락 전환하면서 체감경기 둔화가 예상되는데요. 반도체는 모바일과 PC 수요 둔화 우려에 더해 최근 범용 D램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체감경기전망이 악화됐습니다.
이에 올해 영업실적이 연초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이 61.6%로 나타났는데요.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미국 등 주요국들이 경기침체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책금리 인하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내수 진작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통화정책 전환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며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첨단 전략산업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인프라 투자에 대한 재정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7월 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시스)
경쟁사와 HBM 격차까지…증권가, 실적 전망 하향 조정
이렇듯 반도체 업체에 대외 대형 악재가 몰아치는 상황 속 고대역 메모리(HBM) 시장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독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현존 HBM 최대 용량을 구현한 12단 적층 HBM3E 양산에 업계 최초로 돌입했는데요. 이에 내년에도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다만 삼성전자의 HBM3E 12단 제품은 여전히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에 대해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에 상장되어 있는 마이크론은 논외로 하더라도 국내 경쟁사 대비 주가 열외는 HBM의 경쟁력 때문으로 생각된다”라며 “결자해지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실적 및 주가가 동종업체 대비 차별화되려면, HBM의 경쟁력 입증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내다보았습니다.
여기에 3분기는 전통적인 IT 성수기로 분류되는데요. 스마트폰 판매 부진 등의 여파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기대치를 밑돌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옵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D램 수요의 40%를 차지하는 스마트폰, PC 등 B2C 제품 수요 부진은 하반기에도 크게 회복될 가능성이 작다”라며 “향후 B2C 제품의 수요 회복이 이뤄져야 큰 폭의 상승 추세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외에도 업계는 무리한 선단공정 개발로 인해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이 올 3분기에도 적자를 이어갈 것으로 보는데요. 이에 최근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파운드리 인력 대규모 감축 및 메모리사업부 재배치 등 구조조정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분야 부진이 계속되면서 사내 긴장감이 고조된 상황인데요.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반도체) 부문장(부회장)은 지난 8월 사내 메시지를 통해 “지금 DS 부문은 근원적 경쟁력 회복이라는 절박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시황에 의존하면 또다시 작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삼성이 반도체 주권 확보 경쟁에 밀리는데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사법리스크’까지 재점화하면서 삼성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데요. 증권가에서도 연달아 삼성전자의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증권가에서 총 15곳이 삼성전자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내고 분기 실적 전망치를 기존보다 내렸는데요. 지난 8월 삼성전자 3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13조6606억원이었으나 9월에 들어서면서 11조2313억원으로 2조원 넘게 하락했습니다.
최수빈 기자 choi3201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