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 없는 게임 검열, 국민을 애 취급"

게임 질병코드·사전검열 간담회
천하람 "국가 과도한 개입 살필 것…입법 뒷받침"

입력 : 2024-10-22 오후 4:21:20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국가 기관의 게임 사전 검열이 국내 게임사의 창의적인 시도를 가로막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철우 변호사(한국게임이용자협회장)는 22일 개혁신당이 국회에서 주최한 '게임 질병코드 등재와 사전검열 제도 도입의 문제점' 간담회에서 현행 게임 검열 조항이 게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한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변호사는 최근 21만750여명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32조 제2항 제3호에 대한 헌법소원을 낸 점을 거론하고, 이 조항의 모호성을 지적했습니다.

이철우 변호사가 22일 개혁신당이 국회에서 주최한 '게임 질병코드 등재와 사전검열 제도 도입의 문제점' 간담회에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유명 게임은 안 막는 게관위
 
해당 조항은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물'의 제작·반입을 금지합니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조항의 내용이 표현이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과, 문화예술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직업의 자유 등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헌법소원의 당위성을 밝혔습니다.
 
이어 "(헌법소원)그 이면의 진의는 '게임에 대해서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말고, 영화·드라마·웹툰 등 다른 매체와 동일한 기준으로 바라봐 달라'는 게임 이용자의 간절한 목소리"라고 말했습니다.
 
해당 조항의 모호함을 드러내는 사례로는 '뉴 단간론파 V3'와 '그랜트 테프트 오토 5(GTA V)'에 대한 다른 잣대가 거론됐습니다.
 
앞서 게관위는 추리 게임인 뉴 단간론파 V3에 대한 등급 거부 결정을 내려 국내 유통을 막았는데요. 이 게임은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 학급 재판을 통해 처형하는 내용을 다룹니다. 하지만 게이머가 직접 살인 행위를 조작하거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잔인한 장면도 없고, 해외에선 청소년 이용가 등급으로 팔리고 있어, 게관위의 등급 거부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있어왔습니다.
 
그에 반해 게이머가 직접적이고 자세하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GTA V'는 국내에서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으로 유통중입니다. 이 게임에선 행인을 흉기로 공격하거나 성매매, 마약 투약, 은행 강도, 고문 등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 변호사는 "'범죄를 더 지나치게 묘사했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텐데, 전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 게임이라면 등급 분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냐"고 꼬집었습니다.
 
사후 검열의 불투명성도 지적됐습니다. 게관위는 PC 게임 플랫폼 스팀에 요청해 게임 수백종을 차단시켰는데, 해당 게임의 명단이나 구체적인 사유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게이머는 물론 제작자와 배급업자도 어떤 게임이 무슨 이유로 게임법 제32조 제2항 제3호를 위반했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는 겁니다.
 
이 변호사는 "자연스럽게 국내 게임 창작자들은 통과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모험을 꺼리게 되고, 이용자 또한 국내외 게임 중 언제든지 서비스가 중단될 위험이 있는 게임물을 향유하는 것을 조심할 수밖에 없는 자기검열의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열 조항이 모호하니 처벌의 근거도 명확하지 않게 됩니다. 해당 조항을 어기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데요. 이를 두고 이 변호사는 형벌 근거엔 예측 가능성이 강하게 요구된다는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의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고 봤습니다.
 
이 변호사는 "이번 헌법소원은 이런 규제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확인받는다는 헌법소원심판절차 그 자체의 의의에 그치지 않는다"며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K-게임의 재도약이 실현될 수 있도록, 그리고 게임이 다른 문화 콘텐츠와 나란히 설 수 있도록 이제는 정치권과 업계, 학계가 상품과 정책의 수요층인 게이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성회씨가 '게임 질병코드 등재와 사전검열 제도 도입의 문제점' 간담회에서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범종 기자)
 
"국가후견주의 철폐를"
 
게임을 그저 대중적인 놀이로 봐달라는 호소도 있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G식백과' 운영자 김성회씨는 "게임질병화를 숙원사업으로 여기는 정신의학계와 게임 악마화로 정치적 발언권을 얻으려는 종교계, 그리고 그들의 맹목적인 게임 탄압의 목소리를 관성적으로 보도해 주는 언론들까지 가세하며,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인 게임혐오 정서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그 정서를 양분 삼아 셧다운제 등 다시 악법 발의가 시도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심지어 연속 칼부림 사태, 저출산, 실업률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까지 모두 게임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지경이 이르렀다"며 "정치에 깊이 뿌리 박은 이 게임혐오 정서와 편견을 없애지 않는 이상, 게임의 사회적 인식이라는 시계의 초침은 절대로 저절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 게이머는 계도와 계몽의 대상도, 잠재적 살인자나 정신병자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우리 게이머 역시 똑같은 국민이고 유권자라는 것을 그들이 인정하게 만들어야만 게임의 사회적 인식이라는 시계의 초침은 비로소 다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검은신화: 오공'으로 한국이 콘솔 게임에서도 중국에 밀렸다는 위기의식에 대해선 "학대 받는 아이는 훌륭하게 자랄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정치권에선 국가후견주의에 기반한 검열을 철폐해야 한다는 화답이 이어졌습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우리 헌법이 권력의 원천을 국민으로 명시했는데도, 정작 정부가 게임 하는 국민은 존중하지 않는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천 의원은 "검열국가·보모국가·국부주의적인, 국민을 애 취급하는 우리나라 사회의 검열과 사전 모니터링과의 전체적인 대결구도를 이번 헌법소원이 만들어줬다"고 평했습니다.
 
이어 "우리 사회의 불필요한 검열, 국가의 과도한 개입을 살펴보려 한다"며 "왕정국가를 거쳐 산업화를 독재 정권 아래 이뤄졌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에 대한 국민의 경험이 제한적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입법적으로 뒷받침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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