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치르고 있는 미국은 전형적인 양당제 정치 국가로 꼽힌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미국 양당 체제가 4당 체제와 비슷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내에는 여러 정파가 있는데 크게 자르면 양당 각각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민주당에는 중도적인 자유주의자와 민주사회주의자가 있고, 공화당에는 트럼피안 등 극우적인 세력과 비교적 온건한 전통적 공화당원이 있다.
2021년 1월 10일부터 13일까지 NBC 뉴스는 흥미로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전통적 공화당 지지자'와 '트럼프파', '바이든파'와 '샌더스-워런파'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지 설문했더니 4개 정파의 지지율은 모두 각각 17%로 나타났다. NBC는 "본질적으로 미국 유권자들이 점점 더 4당 체제로 나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 4파 구도는 오히려 양당제가 유지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미국 정치의 문화와 전통, 제1·2당에 유리한 소선거구-단순다수제가 양당제를 지탱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당내에서 양대 흐름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 어느 쪽이든 당내에서 버텨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양당제 속 4파 구도는 양당제가 지닌 다양성 부족을 만회하는 역할을 해왔다.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는 정치학의 오랜 화두지만, 미국 민주당은 그래도 사회주의적 좌파가 의견을 개진하고 세력을 만드는 공간이다. 중도층 지지 획득이 중요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좌파는 전략적으로 자중하는 경향도 있으나 선거가 끝나면 기지개를 켜며 당을 왼쪽으로 견인하려 한다.
다만 공화당에서 일어난 변동 때문에 4파 구도의 앞날이 불투명하기는 하다. 최근 대선에서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 등 공화당 인사들이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거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돕지 않고 있다. 이들이 당내에서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방증이다. 전통적 공화당원들이 입지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미국 정치는 3자 구도에 가깝게 수렴될 것이다.
공교롭게도 근래 한국 정치 역시 4자 구도가 두드러진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갈등은 당 대 당 대결에 맞먹는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이재명 대표의 당이 되었지만, 4월 총선에서 민주당에 육박하는 비례대표 지지율을 올린 조국혁신당도 야권의 한축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4자 구도는 이념과 정책에 따른 분화와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윤석열과 한동훈은 고작 '김건희 리스크'와 '특별감찰관'을 놓고 싸운다. 정치력을 소모하고 국민의 심기를 어지럽힌다. 반면 감세와 재정건전성 훼손, 자본만능적 규제 완화와 난개발에 관해 양자 사이에는 어떤 차이도 없다. 이재명 대 조국은 어떤가. 금융투자소득세는 유예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나중으로 미루자는 이재명, 대기업이 임금 인상을 억제하면 감세 인센티브를 주자는 조국 중 누가 더 보수적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차이가 있다면 '윤석열 탄핵'이나 '검찰청 폐지'를 조국혁신당이 민주당보다 빨리 건다는 것 정도다.
지금 여권에서 윤석열에게 뻗댈 수 있는 유일한 이는 한동훈이고 야권에서 이재명에 덤빌 수 있는 유일한 이는 조국이다. 그래서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지만 이는 역대 다자 구도 가운데 가장 수준이 떨어진다. 그들은 서로 차별화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닮아서 지지 기반을 나눠가질 수 있었다. 선택항은 네 개인 것 같지만 실은 두 개밖에 없다. 미국과는 반대 양상이다. 양당제라고 다 같은 양당제가 아니다.
김수민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