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33년 만에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시행했지만 '늑장 사건처리'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역대 정부별로 살펴보면 윤석열정부 들어 정작 다루는 사건이 줄었는데도 처리 기간은 늘어난 겁니다. 장기간 심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처분에 불복해 소를 제기하는 기업이 늘면서 조사부터 소송까지 갈 경우 3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올해 상반기 사건 처리기간, 작년과 비슷
18일 공정위가 국회에 제출한 '의결 사건처리 단계별 소요시일'을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평균 조사에 414일, 의결에 171일, 소송에 526일이 걸려 총 1111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사건 처리를 위해 행하는 행정적·준사법적 절차는 △인지 △조사단계 △위원회상정 △위원회심의 △합의 △의결 △의결서 송달 △불복(이의신청 또는 행정소송 제기) 등으로 구성됩니다.
최근 공정위는 지난해 4월 조직개편 실행 후 이전해보다 신속한 사건 처리가 가능해졌다고 밝혔는데요. 2022년과 2023년을 비교해 보면 2022년 조사에 453일, 의결 152일, 소송까지 475일이 걸려 총 1080일이 소요됐습니다. 2023년에는 각각 464일, 169일, 284일이 걸려 총 917이 소요됐습니다. 소송기간만 줄었을 뿐 조사와 의결 기간을 비교해 보면 더 늘어난 겁니다.
올해는 작년 대비 더 늘었습니다. 올해 7월 기준 조사에는 458일이, 8월 기준 의결에는 165일이 각각 소요됐는데요. 1년이 아직 되지도 않은 상반기 통계에 가깝지만 이미 지난해랑 비슷한 수준인 겁니다.
기업 제재 등의 의결이 아닌 '무혐의'로 결론난 사건만 따로 살펴봐도 조사부터 심의를 포함해 최종 무혐의 조치가 나오기까지 최근 2년 동안 평균 214일이 소요됐습니다.
그렇다고 다루는 사건이 증가했다고 볼 수도 없는데요. 역대 정부별 공정위의 사건처리 현황을 살펴보면 김대중정부 때 전체 처리 건수는 1만3708건이었습니다. 노무현정부는 2만1523건, 이명박정부 2만1006건, 박근혜정부 1만6876건, 문재인정부 1만4278건, 윤석열정부(올해 6월 기준) 3922건이었습니다. 다만 윤정부 들어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은 아직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공정위는 "공정위가 일을 하면 새롭게 법이나 제도가 정립되고 기준이 생기면서 비슷한 분야의 사건은 줄어들 수 있다"며 "대신 인공지능, 플랫폼 등 여러 법의 경계에 있어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건들은 증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매해 소송비용만 30여억원…변호사 선임비율 97%
사건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은 증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처분에 불복하는 기업은 늘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민병덕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소송 제기율은 2005년 3%, 2006년 4.1%에 머물렀지만 2010년 10%를 돌파한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22년 28.3%까지 치솟았습니다. 올해 9월 기준으로는 23.7%인데요. 공정위 제재 4건 중 1건꼴로 행정소송이 제기된다는 의미입니다.
연도별 소송수행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126건에서 대리인을 선임했고, 공정위 직원 등이 직접 소송에 참여한 건은 4건이었습니다. 변호사 선임 비율이 97%인 겁니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비율은 2017년 82.4%에서 2018년 86%, 2020년대 들어서는 90% 이상을 차지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소송 비용액을 살펴보면 지난해 변호사 선임료로 착수금 16억600만원, 성공보수금 13억1500만원, 패소해서 지급한 배상금은 2억4650만원으로 총 31억6750만원이 쓰였습니다.
2022년에는 변호사 착수금 19억9000만원, 성공보수금 9억5400만원, 배상금 1억1800만원, 2021년은 각각 16억5800만원·11억9200만원·3억1000만원, 2020년은 20억4300만원·6억7000만원·2억3700만원, 2019년 16억7400만원·13억4800만원·2억1500만원으로 조사됐습니다.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는 "공정위에서 다루는 사건은 대부분 민생과 직결되는 이슈인 데다 조사 결과가 나왔을 쯤이면 피해를 입은 쪽에서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질 수도 있다"며 "신속한 진행이 필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