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종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에 분노한 시민들은 국회 앞 대로를 광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시민들은 단상에 올라 저마다 속에 품었던 말들을 꺼내놓았고, 서로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4일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 대로에 즉석으로 단상이 마련됐다. 사진은 단상 위에 올라 발언 중인 한 시민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는 3일 밤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국회로 향했습니다.
4일 오전 4시, 몇 시간 전에 비하면 군중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집회가 농익으면서 남아있던 시민들의 입이 트였습니다.
이들은 자연스레 마련된 단상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 속에 품었던 말들을 꺼내놓았습니다. 발언을 청취한 시민들은 격려의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발언을 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선 사람이 20명을 초과하는 진풍경도 펼쳐졌습니다.
한 20대 여성 발언자는 "침대에 누워있다가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을 보고 부끄러워 참여하게 됐다. 우리는 피로 쓰여진 역사로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이를 이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단상으로 나서 발언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 (사진=뉴스토마토)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밝힌 김모(29)씨는 "내가 윤석열을 뽑았으니 내가 탄핵해도 되는 것 아니냐"며 "잘못된 투표를 해서 죄송하다. 탄핵시키고 새로운 나라 만들자"고 외쳤습니다. 장모(22)씨도 "대통령 투표를 잘못해서 잃는 게 너무 많다"며 "다음부터는 이런 사람들을 절대 뽑지 말자"고 했습니다.
이모(30)씨는 "뉴스 보고 눈을 의심했다. 너무 화가 나서 달려왔다.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새벽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국민들이 윤석열을 심판하자"고 말했습니다.
한 40대 남성 발언자는 "광주 사람들이 계엄군이 들어올 느꼈던 것은 일상이 깨지는 공포가 아니었을까, 우리도 그걸 느끼게 됐다. 광주가 있어서 우리가 이 자리에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인 한 대학생 발언자는 "우리는 대지 위에 많은 빚을 지고 서 있다"고 첨언했습니다.
자신을 역사학도라고 밝힌 대학생은 "국회 앞이 5.18 광주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 달려왔다"며 "비상식적인 권력에 맞서 싸우자"고 했습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대학원생도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연대와 실천"이라며 "오늘 연대와 실천을 뼈리게 체험하고 간다"고 전했습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김모(24)씨는 "이번 비상계염에 무척 화가 났다. 40여년 전 고향 광주에서 계엄에 반대하고 민주주의 부르짖다 체육관 한켠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떠올려서 더욱 그렇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죽음으로 만든 민주주의가 한 사람에 의해 무참히 무너졌다. 우리가 주권자이기에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그는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자"고 외쳤습니다.
역사적 현장에 온 것을 기념하는 한 쌍의 커플. (사진=뉴스토마토)
법학을 전공한 대학생 발언자는 "계엄군이 국회 유리를 깨고 진입을 시도, 야당 대표와 국회의장을 체포하려 했다"며 "이건 반란이다. 계엄이 해제되더라도 끝이 아니다. 절대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눈 뜨고 감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한 대학생 발언자도 "동이 트면 우리는 이 자리에 있었다는 걸 역사가 기억할 것"이라며 "우리의 입법부를 우리 손을 지켰다는 자부심을 가지자"고 했습니다.
이외의 발언자들도 입을 모아 '나라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한 정권을 좌시할 수 없다는 메시지도 드러냈습니다.
오전 6시 현재는 300여명의 시민이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차종관 기자 chajonggw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