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미국 엔비디아가 이끈 인공지능(AI) 열풍이 지난해 글로벌 증시를 휩쓰는 사이 국내 증시는 오히려 뒷걸음질해 투자자들이 실망했는데요. 그 와중에도 차곡차곡 성적을 쌓은 투자자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곳이 가치투자 하우스로 유명한 VIP자산운용입니다.
투자자문사에서 자산운용사로 변신한 후 액티브펀드 시장을 되살리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며 2023년 2월에 첫 번째 공모펀드 ‘VIP The First 증권투자신탁’을 폐쇄형으로 선보여, 출시 당일에 조기 완판시켰고 연이어 4월에 추가 적립이 가능한 개방형 공모펀드 ‘VIP한국형가치투자증권투자신탁1호’를 출시했습니다.
이 펀드의 설정 후 수익률이 25.8%입니다. 지난해 코스피가 죽을 쑤는 가운데서도 성과를 보태 최근 1년 수익률이 14%를 넘습니다. 엔비디아 같은 종목과 비교할 순 없지만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서 코스피와 상대비교평가를 받는 펀드의 성적으로선 칭찬할 만합니다.
VIP자산운용은 VIP한국형가치투자 펀드의 운용법에 대해 ①기업의 성장성 대비 저평가 정도를 고려한 종목 선별 ②버텀업(bottom-up) 중심의 투자 ③장기적으로 기업의 내재가치에 수렴될 것이란 확신을 갖고 저평가된 주식에 장기투자 ④멀티매니저 운용이라고 밝혔습니다. 시장의 변화보다는 개별기업의 가치를 분석, 저평가된 종목을 선별해 길게 내다보고 여러 명이 함께 투자한다고 요약할 수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최준철, 박성재, 김민국, 조창현 네 사람입니다.
최준철(좌), 김민국(우) VIP자산운용 공동대표를 포함해, 가치투자라도 지향점과 특색이 조금씩 다른 네 명이 VIP한국형가치투자 펀드를 함께 운용하고 있다.(사진=VIP자산운용)
메리츠금융→SK가스→오리온→F&F 순 투자 중
하지만 이것만 갖곤 어떤 종목을 선호한다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목에 투자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4일 현재, 가장 많은 자금을 실은 종목은 메리츠금융지주입니다. 투자자들로부터 주주환원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종목답게 펀드자산의 가장 큰 비중인 7.345%를 배분했습니다. 그 다음은 SK가스(4.83%)와 오리온(4.62%), F&F(4.42%), 펌텍코리아(3.68%), 롯데칠성(3.11%) 등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시가총액 대장주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특징적이지만, 비중 상위 종목들도 종목당 비중이 크지 않아 특정종목 의존도가 높지 않습니다. 또한 다른 펀드나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목록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종목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점도 확실한 차별점입니다.
그런데 이 포트폴리오로도 지금 VIP의 매니저들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보유비중을 줄였을 수도 있고, 비중이 적어도 최근에 매수한 종목이 가장 최신 시점의 운용진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파악할 수 있는 지분 변경 공시를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정기업의 주식 보유율이 이제 막 5%를 넘었거나, 5% 이상 보유중인 종목 중에서 추가 매수 또는 매도를 하는 경우 공시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VIP의 모든 투자 내역을 알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공시엔 VIP한국형가치투자펀드 외에도 VIP가 운용하는 모든 펀드를 아울러 매매내역이 올라오는 것이어서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풍산홀딩스 급등시 매도…여전히 10% 투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VIP자산운용이 가장 최근에 지분 변동 공시를 한 종목은 풍산홀딩스입니다. 지난 10일에 공시했습니다. 기존 11.36%였던 지분을 10.79%로 줄였다는 내용입니다.
세부 변동내역을 찾아보면 구체적으로 며칠에 몇 주를 매매했는지 나오는데요. 작년 12월24일에 23만2595주를 매도한 게 컸습니다. 당시 매도한 평균가격은 주당 2만8376원입니다.
실제 주가차트를 확인해 보면 평범하게 거래되던 주식이 그날만 23%나 급등해서 거래를 시작했고 장중 상한가까지 치고 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풍산홀딩스의 류진 회장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다는 소식이 불을 붙인 것 같습니다. VIP의 운용진은 이 이벤트가 기업가치에 특별한 변화를 불러올 재료는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주가가 급등한 사이 주식을 일부를 팔아 차익을 실현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가는 다음날부터 예전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실 VIP는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풍산홀딩스를 꾸준히 매수하는 중이었습니다. 불과 3주 전인 12월2일에 기존 10.27% 지분을 11.36%로 늘렸다는 공시를 냈으니까요. 12월 두 번의 공시를 내기 전 지분변동 공시는 2023년 11월10일 8.95%에서 10.27%로 늘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년 넘게 매매하지 않고 보유했다는 뜻입니다. 2024년 상반기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그때엔 주식을 더 사거나 팔지 않고 있다가 주가가 하락 조정을 거칠 때 늘렸고 트럼프 돌발 호재가 나왔을 때 일부 차익을 실현한 셈입니다.
그 이후 추가로 매매했단 소식이 없으니 아직 풍산홀딩스를 좋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사실 VIP자산운용 같은 중형급 운용사가 상장기업 그것도 중견기업에 10% 넘는 지분을 투자하는 것은 웬만한 확신이 아니고선 어려운 일입니다.
매수하다 오르면 덜고 조정시 재매수
두 번째 최근 공시는 1월10일에 같이 올라온 글로벌텍스프리였습니다. 8.81% 지분을 9.90%로 추가 매수했음을 알렸습니다.
글로벌텍스프리는 아시아 최초의 세금 환급, 택스리펀드(tax refund) 서비스 대행업체입니다. 사후 면세점에서 물품을 산 여행객에게 내국세를 환급 대행하는 사업을 합니다. 당연히 여행각이 많을수록 좋은데 2020년 발발한 코로나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 4년 동안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가 작년부터 본격적인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2024년 결산이 끝나지 않았지만 흑자전환이 확실시됩니다.
VIP는 2023년 12월7일에 무려 7.11% 지분을 확보했단 소식을 알리며 이 종목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세부내역을 보면 그해 11월29일부터 매수를 시작한 것으로 나옵니다. 글로벌텍스프리의 주가는 2023년 회복 기대감이 선반영되며 7월부터 10월까지 크게 올랐다가 다시 하락했는데, 주가가 4000원대까지 충분히 빠진 것을 보고 매입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어 2024년 다시 회복 기대감이 커지며 주가는 4월 초순까지 크게 올랐다가 하락했습니다. 이때에도 VIP는 4월1일에 50만주, 3일에 23만주를 매도하는 등 지분을 줄였고, 5월에 매도한 내역을 모아 8.80%에서 6.94%로 지분이 줄었다고 공시했습니다. 이후 주가가 충분히 하락한 뒤에 다시 매수해 9월에 6.94%에서 8.81%로 늘렸음을 알렸습니다. 유망 종목이라도 주가가 크게 오를 때는 팔았다가 하락한 후에 다시 매수하는 행보를 보인 겁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상세검색 메뉴에서 제출인명에 브이아이피자산운용을 입력하면 VIP자산운용이 제출한 지분 변동 공시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금감원 전자공시 갈무리)
신규매수 종목 주가 그대로…매수 기회?
HDC도 11월부터 매수에 참전, 14일에 5.42%로 첫 공시를 한 후 12월19일에 6.51%로 늘렸다고 알렸습니다. 지난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한 비토가 끊임없이 보도됐으나 VIP는 그가 회장으로 재직 중인 HDC 주식을 사들인 것입니다. 주가도 그와는 무관하게 계속 올랐습니다.
화장품 유통업체 클리오도 10월에 첫 지분(5.77%) 보유공시한 종목인데요. 12월10일에도 지분을 7.16%까지 늘렸다고 공시했습니다. 주가는 계속 하락하다가 11월부터 횡보 중이니까 만약 지금 주식을 산다면 VIP보다 싸게 살 수 있을 겁니다.
이밖에도 피에이치에이, 디와이피엔에프, 백산, 솔루엠은 11월20일부터 22일 사이에 연달아 5% 지분공시를 한 종목입니다. 모두 주가가 안정돼 있어 VIP와 같은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언제든 매수 가능 범위에 있는 종목들입니다.
특정 투자자, 투자집단의 성과를 부러워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그들이 투자하는 기업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투자하는 이유와 방법에 집중하다 보면 개인들도 충분히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