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보좌관을 그만둔 이유

입력 : 2025-02-05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지난해 3월, 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한 지인을 도와 선거운동을 했다. 지역을 돌며 유권자들에게 인사하고 명함을 돌리며 지지를 호소했다. 일부 유권자들은 싫은 내색을 보였고 몇몇 유권자들은 지지한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이정재가 의원실 보좌관으로 출연한 드라마 <보좌관> 시즌2 포스터. 현실에 이런 보좌관은 없다.(사진=티빙 제공)
 
놀랍게도 지지율과 유권자들의 호응은 거의 일치했다. 후보가 바닥을 훑고 다니면 다닐수록 당선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은 맞는 거 같았다. 물론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큰 관심이 없어 보였는데, 그들은 선거를 자신과 무관한 일로 대하는 듯 싶었다. 그들에게 정치는 멀리 있었다.
 
모르는 이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 건네는 것이 처음엔 멋쩍고 어색했지만, 이내 외면과 냉대에도 익숙해졌다. 다만 몸은 고됐다. 새벽부터 일몰시간까지 거리에서 명함과 인사를 건네다 저녁을 먹으면 노곤했다. 물론 운동원보다 후보가 더 힘들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를 하려는 이에게 선거운동은 꼭 거쳐야 할 관문이기도 했다. 유권자에게 머리를 숙이고 지지를 호소하는 일의 반복을 통해, 국민을 섬기는 정치가 몸에 기억되기 때문이었다. 육체는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어서, 실제 몸을 낮추고 허리를 굽힐수록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는 말의 뜻을 그제서야 알았다.
 
지인은 당선됐고,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갔다. 어깨너머 봐왔던 국회와 실제 일해본 국회는 많이 달랐다. 보좌라는 말 그대로 모든 업무가 의원을 보좌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났다.
 
예상보다 보좌관의 일은 많았다. 보도자료부터 언론 인터뷰 대본 및 기고문 작성, 회의나 행사 인사말, 집회 발언, SNS 글까지 모두 보좌관이 써야할 몫이었다. 의원실에는 두 명의 보좌관 아래 선임비서관을 비롯해 인턴까지 총 10명의 보좌진이 있었지만, 글과 관련한 업무는 모두 내 차지였다. 종일 쓰고도 또 쓸 일이 남아 있었다. 주말에도 쓰고 밤에도 써야 했다. 물론 영감(보좌관들은 의원을 영감이나 배지로 부른다)이 다른 보좌진의 글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보좌관의 기본 업무량이 적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4일 새벽,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모습.(사진=MBC 방송화면 갈무리)
 
또한 보좌진은 퇴근이 없었다. 영감이 퇴근하더라도 보좌진은 남아서 다음날 영감이 참석할 회의와 청문회 등의 자료를 밤늦도록 만들었다. 특별법이나 개정안 법률을 만드는 것도 보좌진의 일이었다. 국감 때 한 달째 집에 못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가장 바쁘고 빡센 사회부 기자 시절에도 퇴근은 있었는데, 보좌진은 퇴근이 불명확했다.
 
그렇게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왕왕 든 생각은, ‘국회의원은 스스로 하는 일이 별로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의원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회의에 참석하고 인터뷰를 하거나, 법안을 발의하거나, 행사에 얼굴이 비치는 일이었다. 보좌진이 하는 것은 그 일이 가능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운전부터 법률안까지 모든 걸 다해주니까 의원 노릇은 할 만해 보였다. 심지어 국회의장을 지낸 한 다선 의원은 자신의 옷도 보좌진이 입혀줄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니 말 다했다. 숨 쉬는 것만 본인이 한다고 봐야 하나.
 
물론 내 착각이겠으나, 노동자나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법을 만들고 고치는 의원들을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는 점도 씁쓸함을 더했다. 300명의 의원들은 모두 엄청나게 바빴지만, 약자들의 곁을 지키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국회가 뭔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 것은. 그렇게 회의만을 느낀 채 4개월여 만에 국회를 나왔다. 일이 많기도 했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듯 싶던 것이 컸다.
 
그러던 겨울, 비상계엄 사태를 맞았다. 망상에 빠진 윤석열의 계엄을 빠르게 무력화한 것은 국회였다. 평소에 서민들 삶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여겨온 국회의원들이었다. 시대착오적인 내란 사태는 내게 국회와 정치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웠다. 매일 무의미한 말의 싸움만 이뤄지는 것 같지만, 사실 국회는 한국사회 변화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난 잊고 있었다. 그날 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지는 장면을 보면서, 비로소 내 안의 반정치 의식과 결별할 수 있었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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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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