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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반도체 실적 부진 등 전방위적 위기 속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삼성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
·회계부정
’ 의혹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부터다
. 검찰의 상고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 대법원에서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 이에 이 회장은 오랜 기간 자신을 옥죄어 온
‘사법리스크
’라는 족쇄를 풀게 됐고
, 삼성그룹 차원에서도
‘총수 리스크
’라는 오명을 벗게 됐다
.
2015년도부터 햇수로 10년째 이어져 온 송사는 일단락됐지만, 이 회장을 둘러싼 환경은 더 엄혹하다. 이 회장에게 글로벌 기업 삼성의 위기를 극복해야하는 과제와, 경제 침체 상황을 타개할 재계 1위 기업 총수의 역할이 동시에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회장은 사법적 파장을 고려한 듯 기업의 방향성과 관련한 대내외 메시지를 자제하는 등 잠행 경영을 이어왔다. 재계 안팎에서도 리스크에 직면한 이 회장의 소극적 행보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농후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이 회장은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가 왔다. 글로벌 기업인 삼성그룹 총수라는 왕관의 무게를 오롯이 버텨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이 회장도 삼성의 위기 극복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무죄 선고가 난 바로 다음 날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인공지능(AI)과 관련 포괄적 협력을 위한 ‘3자 회동’에 나선 것도 그 일환으로 읽힌다. AI라는 시대적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진 이 회장의 기민한 대응에 대해 시장 반응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외부 대응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내부 변화다. 이제 미뤄놓거나 유예돼 온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책임 경영을 위한 이 회장의 등기 임원 복귀가 필수적이다. 아울러 거대 기업에 걸맞는 지배구조 개선도 시급하다. 이 회장(총수 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수직적 지배구조를 벗어난 혁신적이고 수평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그 무엇보다 주주를 위한 조직 구성이 시급하다. 삼성의 상징성인 ‘초격차’ 외에 다른 전략 마련도 필요하다.
항소심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는 삼성물산 합병이 ‘지배권 승계를 위한 불법 합병’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총수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투명한 정도 경영으로 나아갈 때, 삼성에 대한 세간의 인식도 변화할 수 있다.
묵은 땅에선 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 법이다. 때론 땅을 갈아 엎어야 한다. 이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할 시간이다. 언젠가 다가올 삼성의 봄을 기대한다.
배덕훈 재계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