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통화도 못한 정부…'외교공백'에 재계 ‘각자도생’

정상간 핫라인 구축 필수적인데 감감 무소식
재계, 대미 사절단 보내고 대관 강화로 대비
"정부 대응 역부족…개별 기업으로 대응 한계"
"당장 한국 관세 부과하면 맞대응할 수 있나"

입력 : 2025-02-07 오후 4:26:53
 
[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 대미 무역흑자국인 중국, 멕시코, 캐나다에 고율의 관세 부과를 천명하며 관세 전쟁의 포문을 시작한 것을 두고, 다음 차례는 또 다른 흑자국인 한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인데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도 못한 실정입니다. 리더십 부재로 사실상 정상 외교가 올스톱된 형국에서 재계는 대미 사절단을 파견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 각자도생하고 있지만 '무정부' 하의 고군분투로 한숨만 나오는 형국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3주차를 맞아 정상외교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지난 4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이어 7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습니다이시바 총리는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일본에 대한 관세 확대를 피하기 위한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의 조치를 꺼낼 것으로 관측됩니다. 주고 받는 것을 중시하는 트럼프 특성에 걸맞게 정상 외교를 통해서도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인데, 대미 주요 무역흑자국인 한국은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아 외교 공백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지난 트럼프 1기를 복기해보면 정상간 핫라인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임에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 간 전화통화는 7일 현재까지도 이뤄지지 못한 실정입니다. 앞선 탄핵정국이던 2017년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이 1기 집권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과 열흘 만에 통화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늦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무정부' 상황에서 재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등 보호무역주의 정책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재계는 지난해부터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대관을 강화하는 등 개별 기업들을 중심으로 정계 네트워크 접점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대한상의는 최근 2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을 꾸리고 이달 19~20일 워싱턴 DC를 공식 방문할 계획입니다. 현재 참석자 명단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한상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등이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지만, 내란 사태 여파로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가 장기화되는 것은, 재계로서 아쉬운 대목입니다. 재계와 정부 부처가 실무 논의를 통해 피해 최소화에 힘을 쏟고 있지만, 정상 간 소통이 부재한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정책 변화 예측이 어려운 점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카운터 파트너가 없는 현 상황이 타개되지 않는 한, 실무진의 대응이 큰 실효성을 갖기 힘든 것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미국 방문 사절단도 다 기업 관계자만 가는 상황으로 사실 정부와 함께 공동 대응을 한다고 하지만 역부족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실제 (트럼프 정부의) 타깃 자체가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인데 기업이 11로 대응하는 것이 사실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 체제하에서는 임시 리더를 대화 상대로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산 가전제품 등에 대한 관세 인상 요구를 해올 경우 정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개별 기업 입장에서도 국가 차원의 관세 문제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기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트럼프가 한국에 내놓을 청구서가 임박한 점도 우려를 키웁니다. 전문가들은 중국, 멕시코, 캐나다에 이어 한국이 관세 부과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관세 전쟁이 대미 무역흑자국을 대상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중국, 멕시코 다음으로 대표적인 대미 무역흑자국이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의 관세 전쟁 포문에 멕시코 대통령과 캐나다 총리가 즉각 대응에 나서 미국의 행정명령이 유예됐는데, 한국의 경우 속수무책 상황이 아니냐"며 "정치적 불안정성이 하루 빨리 해소돼야 하는 이유"라고 했습니다.
 
(사진=뉴스토마토)
 
재계, 현지 투자·공급망 변화 주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계 입장에선 정부 대응을 믿고 지켜보기보다는 기업 개별적으로 활로를 찾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입니다최근 부당합병·회계부정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사법 족쇄를 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첫 공식 행보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의 ‘3자 회동을 선택했습니다. 이번 회동에서 인공지능(AI)과 관련 포괄적 협력 논의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을 들이고 있는 대규모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참여 여부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만일 삼성그룹이 향후 4년간 50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미국에 AI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합류한다면 신규 반도체 공급망 등 시너지를 비롯해 투자를 통해 미국 정부에 긍정적인 인상을 심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철강 계열사인 현대제철도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 강판 제품 등을 생산하는 제철소 건설을 검토 중인데요. 트럼프 관세 정책에 대응함과 동시에 미국 현지 자동차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전략적인 투자를 전향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또한 재계는 트럼프 정부의 캐나다와 멕시코 관세 부과에 따른 대응책 마련도 준비 중인데요. 멕시코와 캐나다는 북미를 겨냥한 국내 기업의 주요 생산기지로 꼽히기에 관세 현실화에 따른 공급망 다변화 전략으로 응수하는 모습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운영 중인데요. 김창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고율 관세가 부과된 제품은 여러 생산지에서 생산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유통업체와 협력해 리스크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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