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의 K-국방)국가이익을 지키는 협상 방법

최용선 전 청와대 행정관, <트럼프를 이기는 협상> 신간 화제
트럼프 2기, 한미방위비 재협상 압박 시점서 참고할 만
국가이익 지킬 때 한·미 동맹도 발전하는 법
'알아서 기고 알아서 퍼주기' 경계해야

입력 : 2025-02-11 오전 6:00: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오후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연설을 마치고 주한미군 장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과 미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1953년 10월 상호방위조약을 맺었습니다. 북한 공산군한테 침공당해 우리 힘으로 한국을 지키기 어려울 때 미국에 도움을 청했죠. 그 뒤 한·미 동맹을 72년째 유지하고 있는데요. 세계 역사를 보면 동맹 관계를 몇십 년씩 이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나라끼리 필요에 따라 동맹을 맺었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동맹을 해소하는 일이 흔합니다.
 
한·미가 오랜 기간 동맹을 유지하는 이유는 동맹이 서로 도움이 된다고 봐서입니다. 지금은 한국전쟁 때처럼 우리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상황이 아니죠. 두 나라가 각자 국가이익을 기초로 해서,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을까를 잘 조율할 때 동맹이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한국 국방 역사를 보면 미국을 상대로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한 인물이 있습니다. 주월한국군 초대 사령관(1965~1969)을 지낸 채명신 장군인데요. 박정희 정부가 베트남 파병을 결정할 때 파병 부대 지휘권은 당연히 미군이 행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한국군 지휘권도 주한미군 사령관이 쥐고 있었으니, 베트남 파병 부대는 말할 것도 없었죠.
 
베트남 전선에서 한국군이 미군 휘하로 들어가면 한국군은 어려운 전투에 투입돼 희생을 많이 내고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점을 채 장군은 고민했습니다. 그는 출발 전 박정희 대통령한테 "현지에 가서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전권 위임을 요청했습니다. 베트남에 도착한 한국군은 전투에 들어가지 않고 현지 적응 훈련을 한다고 시간을 보냅니다. 동시에 미군 장성들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협상한 끝에 한국군 독자 지휘권을 확보하고야 맙니다. 웨스트모얼랜드 주베트남 미군 총사령관도 채 장군을 높이 평가했죠. 이렇게 끈기와 지혜를 발휘한 끝에 한국군은 인명 손실을 최소화했습니다.
 
미군 전략폭격기 B-52 '스트래토포트리스'가 지난 2023년 10월 1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아덱스(ADEX) 2023' 개막식에서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본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미국 국익을 일방적으로 관철하겠다면서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한국한테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2024년 1조4028억원)을 지금보다 10배쯤 늘려 받아내겠다고 진작에 공언했죠. 지금은 협상 시점을 고르고 있는 듯합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안보실 행정관을 지낸 최용선씨가 이런 상황에 맞춘 듯이 <트럼프를 이기는 협상-한·미 방위분담금 협상을 기록하다>라는 신간을 냈습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2018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벌인 제10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참여했던 저자가 협상 전말을 기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에도 한국한테서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달러 이상을 받아내겠다고 공언하다가 나중에 10억달러를 관철하려고 했습니다. 미국 쪽은 금액을 늘리려고 갖가지 명목을 만들며 무리한 주장을 쏟아냈습니다. 이 책을 보면 한국 협상단은 진통 속에서도 우리 국가이익을 지켜냈습니다.
 
첫째로, 미국 쪽이 '작전 비용' 신설을 강하게 요구했지만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방위비 분담금은 본래 주한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한국에 있는 미국 군사시설 건설비, 군수지원비로 쓰자는 것입니다. 미국 쪽은 이것만이 아니고, 괌이나 하와이, 미국 본토에서 폭격기나 항공모함이 출동하는 '작전 비용'까지 방위비 분담금에 넣자고 주장했습니다. B-1B 랜서 폭격기 1대가 괌 기지에서 한반도로 1차례 출격할 경우 30억~40억원이 든다고 합니다. 항공모함 전대가 한 차례 한반도 부근에 와서 훈련하면 400억~500억원이 든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발진하는 전략자산 전개 비용은 주한미군지위협정과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정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협상단은 미국 쪽 요구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둘째로, 방위비 분담금을 활용한 역외자산 정비 지원 관행을 대폭 개선했습니다. 주한미군 기지에서 미군이 사용하는 장비는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해 정비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에 있는 장비는 다르죠. 한국 방위를 위해 사용하는 장비라고 특정하기 어렵죠. 그런데도 주한 미군 항공기 정비 비용보다 훨씬 많은 돈을, 일본과 미국 본토에 있는 미군 항공기를 정비하는 데 그동안 사용해왔습니다. 제10차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미 양쪽은 '잘못된 역외자산 정비 지원' 관행을 바로잡기로 합의했습니다. 그 결과 2020년 이후 한국 영토와 영해 바깥에 배치된 미군 자산을 정비하는데 방위비 분담금을 쓰는 규모가 많이 줄었습니다.
 
신간 <트럼프를 이기는 협상> 책 표지. (사진=예스24 갈무리)
 
셋째로, 1조389억원(2019년 기준) 규모로 총액과 현금 지원 비중을 늘렸지만, 현금은 주한미군 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에 많이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윤석열정부는 트럼프 재선에 대비한다고 2024년 중에 바이든 행정부와 2026~2030년에 적용할 방위비 분담금 협상(제12차)을 미리 벌였고, 우리 경우 국회 비준까지 마쳤습니다. 꼼수이긴 했죠. 트럼프는 이 합의를 무시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재협상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바이든 행정부와 진행한 합의 정신을 먼저 내세워야 합니다. 외교 관계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강조해야죠. 이런 원칙을 전제하고요. 다음 순서로 조용히 협상 전략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트럼프 1기 때 협상 경험도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알아서 기고 알아서 퍼주면 곤란합니다. 채명신 장군이 보여줬듯이, 우리가 10차 방위비 협상 때 보여줬듯이, 국가이익을 지키며 조화로운 절충점을 찾겠다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필자 소개/박창식/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말하기와 글쓰기,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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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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