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삭감률 70%…법원 "무효"

A&D신용정보 임금피크제, 항소심 판결서 무효로 뒤집혀
과도한 삭감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동의 절차도 졸속

입력 : 2025-02-17 오전 11:07:13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고 할지라도 임금 삭감률이 70%에 달한다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사무금융노조 A&D신용정보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앞에서 승소 뒤 "정년까지 일하고 싶다, 정당하게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사진=뉴스토마토)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8-2부(부장판사 박성윤 정경근 박순영)는 최근 사무금융노조 A&D신용정보지부(지부장 고태홍) 조합원 10명이 A&D신용정보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원고 패소를 판결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겁니다. 
 
A&D신용정보는 2016년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습니다.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임금피크 5년간 지급률은 190%에 불과했습니다. 5년 일해 2년치 임금도 못 받는다는 뜻입니다. 연평균 지급률은 38%인데, 해마다 지급률이 줄어 임금피크 4~5년차(59~60세) 땐 30%까지 떨어집니다. 임금삭감률로 치면 70%입니다. 
 
이는 동종업계와 비교해도 터무니없는 수준입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4월 공공·민간 금융권 69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5년간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경우 연평균 지급률은 65%였습니다. 이 사건 연평균 지급률의 2배가량입니다. 그런데도 사측은 적법한 동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졸속으로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였다는 게 노조 주장입니다. 
 
1심은 회사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사측이 임금피크제 도입에서 절차적 요건도 갖췄고, 그 내용이 고령자고용법상 연령 차별로 볼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특히 재판부는 “임금삭감률 정도가 다소 높다”면서도 “정년 연장으로 임금 총액 측면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됐다”고 판시했습니다. 
 
박근혜정부 당시 정년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가 급격히 도입되면서 무효를 다투는 소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대한 절차적 요건을 충족했는지,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삭감해 차별은 아닌지 등이 쟁점이 됐습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 변경 없는 정년유지형과, 정년을 늘리는 정년연장형으로 나뉩니다. 정년유지형과 달리 정년연장형이 무효 판결을 받은 판례는 드뭅니다. 정년연장으로 생애 임금총액이 늘어났으니, 노동자에게 이익이라는 판단입니다. 1심 판결도 이러한 판례 경향을 따른 겁니다. 이에 노동의 대가로서 임금의 적정성을 따지지 않은 기계적 판단이란 지적이 컸습니다. 
 
그런데 항소심 결과는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과도한 임금삭감률 등을 이유로 임금피크제 도입이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2심 재판부는 “임금피크제로 인한 지급률은 동종업계 등에 비춰봐도 현저히 낮다”며 “감액 정도가 종전 임금 대비 절반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중대함에도, 대상자들의 업무를 조정하는 등 대상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측은 특별격려금과 별도의 성과급 등을 지급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사측은 이 사건 소송 중 성과급 등을 제공하려고 했고, 이에 노동자들이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실제 시행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노동자 처우 규정을 정비해 시행한 게 아니라 일부 기간에 대한 시혜적 조치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또 사측은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에게 선택적 희망퇴직제, 퇴직후 재고용 프로그램 등을 제공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고령자에 대해 고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고령자고용법 입법취지에 반하여 조기퇴직을 상정한 제도”라며 “정년연장에 따라 추가 임금을 부담해야 하는 사업주의 현실적 사업 여건 등을 고려해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대한 대상조치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라도 노동자 과반수 동의 절차를 거치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측은 이런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본 겁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를 논의한 노사협의회 결과가 전체 노동자에게 공유됐다고 볼 증거가 없는 점, 사측이 개최한 임금피크제 설명회 참석인원을 파악할 만한 객관적 자료가 없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다만 노조 측이 항소심에서 절차적 문제만 주장한 만큼, 재판부는 별도로 고령자고용법 위반 등 내용적 문제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노조를 대리한 김하경 변호사(법무법인 여는)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 없이 생애 임금 총액이 많아졌다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이익인 것처럼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데, 항소심에서 임금의 적정성을 따져서 고무적”이라며 “사측은 임금피크제를 설명한 지 일주일 만에 도입했는데, 그 과정이 졸속이었던 점도 인정됐다”고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노조는 선고 결과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노조는 “비정상적 임금피크제를 운영하는 기업에 경종을 울렸다”며 “이번 판결을 통해 임금피크제 무효를 선언하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후속적 조치를 만들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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