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착형 다채널 센서와 색깔 있는 미각 자극제 액체가 들어있는 팩, 전자기 작동장치(일종의 극소형 펌프), 그리고 치아 모형에 장착된 e테이스트(사진=사이언스 어드밴시스 게재 논문 캡처)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제작에도 참여한 SF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 분)는 햅틱 수트를 착용하고 가상 현실에서 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상 현실에서 싸움을 하지만 충격과 진동을 느낍니다. 햅틱 장갑으로 가상 현실에서 물건을 잡으면 물건의 질감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가상 현실에서 한적한 시골에 있으며 흙냄새도 맡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동명의 원작 소설 속에서는 가상 현실에서 맛을 볼 수도 있습니다. 기술 발전은 인간의 감각을 가상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기술의 발전으로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간의 연결을 더욱 강화되고 생체물리학적 신호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감 중 하나인 미각에 대한 발전은 상대적으로 더딥니다. 그래서 “먹어봐야 맛을 안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런데 이제 먹지 않아도 맛을 알 수 있는 세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는 가상 미각 기술에 대한 주목할 만한 논문이 실렸습니다. 이 논문에서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 재료공학과 징후아 리(Jinghua Li)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밟고 있는 이젠 지아(Yizhen Jia)를 비롯한 일단의 중국계 대학원생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커피, 레모네이드, 달걀 프라이, 케이크, 생선 수프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생체 통합 미각 인터페이스 ‘e테이스트(eTaste)’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분리된 센서와 작동기(actuator)를 무선 통신 모듈과 결합하여 원격으로 맛을 감지하고 재현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e테이스트 센서는 포도당과 글루타메이트와 같은 분자를 인식해, 이를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umami)이라는 다섯 가지 기본 맛으로 변환합니다. 전기 신호로 포착된 데이터는 무선으로 원격 장치에 전달되어 맛을 복제합니다. 연구자들이 수행한 현장 테스트에서 이 장치는 다양한 맛 강도를 디지털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으며, 사용자에게 안전하고 다양한 맛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e테이스트는 기계적으로는 미세유체학(microfluids)을 기반으로 합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은 인스턴트 라면 수프처럼 보이는 다섯 내지 여섯 개 팩을 입에 물고 이 팩들은 가느다란 튜브로 입안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센서에서 신호를 받으면 팩 안에 있는 미세 펌프는 작동을 시작해 팩에 담겨있는 미각 자극하는 물질을 혀로 보냅니다.
이번 실험의 목표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레모네이드의 맛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연구팀이 개발한 e테이스트는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농도로 레모네이드 맛을 전달했습니다. e테이스트를 통해 느낀 맛과 팩에서 펌프를 통해 섞어 보낸 물질을 섞어 만든 것을 마셨을 때 느낀 맛에 대해 참가자들의 반응은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가자들은 또한 화학적 조제를 통해 생성된 커피, 달걀프라이, 케이크, 레모네이드, 생선 수프의 맛을 전달받았을 때, 그들이 전달받은 맛이 다섯 가지 맛 중 어떤 것인지 정확히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의 더 복잡한 버전은 소금물, 구연산, 포도당과 같은 다양한 물질이 포함된 팩들이 테이블 위에 반원형으로 배열해 튜브를 물고 있는 사람이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연구팀은 혀의 미세한 진동이 음식 맛을 원격 체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냄새가 미각적 체험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추가적인 연구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울러 시스템을 더욱 소형화하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멀리 있는 사물을 보고 듣는 것은 이미 당연한 현실로 여겨집니다. 아직은 실험 단계이지만 멀리 있는 것을 맛 볼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인터넷 쇼핑몰에서 e테이스트 같은 개인용 단말기를 팔고 원격 맛보기 서비스를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이번 연구는 VR/AR 기술에 화학적 기술을 접목해 사용자가 시청각적 가상 현실을 넘어 미각을 통합한 가상 현실을 경험할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