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한민국 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국방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뉴스토마토> 산하 K-국방연구소(소장 박창식, 전 국가홍보원장)는 6일 부승찬·이기헌 민주당 의원과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방을 정상화하고 발전시키는 9가지 제안' 토론회를 열고 국방개혁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병주·박선원·안규백·양문석·이기헌·추미애·허영 민주당 의원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는 △김윤태 전 한국국방연구원장 △박창식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장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최용선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발제자로 나서 '국민의 군대'와 '강력한 군대'·'효율적 군대'라는 큰 틀에서의 개혁 방안을 내놨습니다.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이 의원은 "이번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 국방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났다"며 "불법 비상계엄 사태를 단순히 사건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군을 동원해 헌정질서를 파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부 의원은 "군은 오직 헌법과 법률에 따라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는 기관"이라며 "부끄러운 군이 아니라 나라를 지킨다는 명예로 빛나는 군으로 되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서면 축사를 통해 "군의 독선적인 의사소통 구조, 정치권력과의 결탁, 사관학교 중심의 폐쇄적 문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방을 정상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9가지 제안' 토론회. 왼쪽 아랫줄 부터 박선원 의원, 안규백 의원, 추미애 의원, 정광섭 뉴스토마토 대표이사, 박창식 뉴스토마토 K국방연구소 소장,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왼쪽 윗줄 황명하 전 광복회 호주지회장, 허영 의원, 양문석 의원, 이기헌 의원, 최용선 민주연구원 부원장, 여석주 전 국방부 정책실장. (사진=뉴스토마토)
"선택적 모병제 포함 병역제도 개선 필요"
북한이 사실상 핵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한·미 역시 이를 압도하는 군사적 억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밀집된 막대한 공세적 군사력은 상호 공멸을 초래하는 만큼 전면전 가능성은 낮게 점쳐집니다.
그럼에도 북한의 비정상적 전쟁도발 가능성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인한 안보 환경의 불확실성이 대두됩니다. 결국 우리 국민 생활의 평화와 안전이 보장받기 위해서는 우리 군이 '강력한 군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옵니다.
김 전 원장은 "(트럼프 행정부 등장으로) 가치와 동맹은 뒷전으로, 노골적 자국이익 우선주의를 목도하고 있다"며 "동북아 안보 상황도 트럼프 정부와 미·중 패권 경쟁으로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져 군사적 자강이 더욱 강조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관련해 독자 핵무장과 전술핵 배치 등에 대한 방안이 거론되는데요. 김 전 원장은 이 같은 방안들이 실현 가능성도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핵무장은 한·미 동맹의 훼손으로 인한 안보 약화와 정치·경제적 손실을 일으킬 것"이라며 "우리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신 "핵무장 추구 경로로 핵 잠재력이 아닌 경제·산업적 측면에서 평화적 핵사용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며 "미국과 국제사회가 동의하는 결정적 안보 여건의 변화가 없는 한 독자적 핵무장 추진이 없을 것임을 명확히 하고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 전 정책실장은 강군 육성을 위해서는 '무기 및 장비'의 교체보다는 '인원 및 운영'의 혁신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선택적 모병제'를 포함한 병역제도의 개선도 촉구했습니다.
그는 "징병제를 채택한 나라의 군대에게 군사적 전문성 저하 현상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며 "첨단 무기의 역량이 첨단 강군의 전력으로 실현되려면 이 무기를 현장에서 직접 운용할 지휘자와 사용자의 몰입도와 전문성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현행 제도는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에 여 전 정책실장은 징병제와 선택적 모병제를 혼합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의무복무 병사들은 교육 위주로 단기간 복무 후 예비역으로 전환하되, 여기서 선발된 지원복무 병사들이 직업군인 신분으로 전문적 임무에 투입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방을 정상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9가지 제안' 토론회. 발제자인 최용선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진=뉴스토마토)
"국방 영역 글로벌 업무 확대해야"
안보 위주의 군을 넘어 국가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격을 높이는 효율적 군대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박 소장은 "국방 업무가 한반도 내부 위협 억제에 치우쳐 있다"며 "국방 영역에서도 글로벌 업무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관련해 그는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 확대 △군사협력 범위 확대 △북극 항로 대비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국가적으로 4강 외교를 강화하고 아시아와 글로벌 사우스 접근을 강화하는 과제에 맞춰 국방 업무에서도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북극 항로와 관련해서는 "국방부 차원에서 시대 환경 변화에 맞춰 국가 대외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기본 정책문서에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최 부원장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문재인정부에서 물꼬를 튼 방산수출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엔진 국산화 등)를 중심으로 '패키지 딜'을 진행해 온 반면, 윤석열정부는 수십 년간 쌓아온 원천기술을 허무하게 내어주는 방식으로 추진됐다"면서 "새로운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방위산업발전법령 내 범정부적 수출산업 협력 지원 근거를 보강하고, 국방부 '수출 TF'와 방위사업청 국제국 등 중복되고 이원화된 체계를 정리해야 한다"며 "방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 우위를 위해 국방부가 소유하고 있는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된 최종제품을 수출하는 경우 별도의 기술료를 징수하지 않는 이스라엘과 같은 정책 도입도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또 지속 가능한 방산 수출을 위해 'K-방산 패키지 모델'을 도입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시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방산 패키지 모델이란 단순한 무기 판매가 아닌, 무기체계+운용체계+유지보수(MRO)+방산 금융+기술 협력이 포함된 종합 방산 수출 패키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군 인사, 국회 통제 장치 강화해야"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군의 무조건적인 '복종' 문화에 대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최 교수는 "우리 군은 '국민의 군대'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군 운영의 원칙과 기준이 어때야 하는지 불분명하다"며 "군인기본정책을 통해 국민의 군대가 구현될 수 있는 구체적 방향과 실천적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더불어 사관학교 교육체계의 혁신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사관학교는 엘리트 장교를 양성함과 동시에 군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를 내면화하고 이를 군 조직 전반에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며 "초기단계인 사관학교가 장교 개개인의 리더십과 군 조직 전반의 운영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교수진 절대 다수가 모교 출신 현역 장교로 구성되는 것은 사회와 군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군대 문화와 관련해서는 인사시스템 혁신을 통한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상관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군의 정치 종속화 문제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독점하는 군 인사시스템과 깊은 관련이 있다"며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인식된 군 인사권에 대한 국회의 통제 장치를 확대·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차제에는 각군 사관학교를 국군사관학교로 통합하는 문제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윤석열정부에서 논란이 된 군의 역사 논쟁을 극복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습니다. 박 소장은 "국군 정통성 문제는 특정 지도자의 취향이나 호불호에 좌우될 문제가 아니며, 헌법과 법률 체계에 맞춰 엄밀하게 정비해야 한다"며 "국군조직법 제1조에 ''국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군, 한국광복군의 역사를 계승하는 국민의 군대'라는 표현을 넣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박 소장은 또 "독립전쟁과 관련한 기념 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9월 17일 광복군 성립 전례일부터 시작해 10월 1일 국군의날까지 이어지는 국방 기념 주간을 운영해볼 수도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