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화학, 위기 탈출 '절박'…산업경쟁력 '악화' 우려

제조업 총생산액의 13.2% 차지 '정밀화학'
공급망 재편 경쟁력에 '한국 낙제점'
AI·빅데이터 등 디지털화 투자비용도 부담
새로운 투자 영역, 성장 모멘텀 확보해야
"급변하는 외부 환경, 효과적 지원 필요"

입력 : 2025-03-12 오후 5:17:50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국가 산업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분야인 우리나라의 '정밀화학산업'이 세계 경쟁력에서 뒤처지고 있습니다. 
 
석유화학산업에서 생산한 기초화학제품을 활용해 전자·자동차·건설 등 다양한 산업의 필요 중간재를 제조하지만,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자재 공급 지연(중단 위험)과 디지털·그린 전환 등 급격한 경제 환경 변화의 시대적 과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핵심 품목 국산화와 고부가·친환경 제품 관련 법·제도 개선, 중소기업의 디지털·그린 인프라 확충 등 정책적 뒷받침이 요구되고 있는 겁니다.
 
12일 산업연구원의 '정밀화학산업 경쟁력 진단'을 보면 한국의 종합 경쟁력 점수(전문가 조사 응답 5점 척도)는 2.8로 미국, 독일 등 선도국의 평균 점수인 4.1보다 현저히 낮았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경쟁력 '낙제점'에 공급망 불안까지
 
12일 산업연구원의 '정밀화학산업 경쟁력 진단'을 보면 한국의 종합 경쟁력 점수(전문가 조사 응답 5점 척도)는 2.8로 미국, 독일 등 선도국의 평균 점수인 4.1보다 현저히 낮았습니다.
 
국내 화학산업은 2023년 기준 262조5000억원의 생산액을 기록하는 등 제조업 총생산액의 13.2%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 정밀화학산업 매출액은 2조1000억달러에 달합니다. 이 중 세제, 화장품, 광택제 제조업이 전체의 26.4%를 차지했으며 비료·질소화합물 제조업(22.8%), 페인트·코팅제·잉크 제조업(22.7%)이 뒤를 이었습니다.
 
2021~2030년 기간 정밀화학은 연평균 4% 성장을 내다보는 산업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점유율은 2023년 기준으로 3.5%에 불과합니다. 중국(39.5%), 미국(10.8%), 독일(5.3%)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최근 5년간 국내 정밀화학산업의 연평균 수출액은 4.6% 증가세로 지난해 240억달러 수준의 수출 성적을 올린 바 있습니다. 단일 품목으로 화장품이 수출 확대를 견인한 겁니다. 반면 수입액도 172억달러로 전기·전자 제조에 필수적인 기타 화학제품 비중이 109억 달러로 가장 높습니다.
 
문제는 블록화·지정학적 갈등 심화 속 공급망이 취약해지면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공급망 재편 경쟁력 점수는 2.75로 세계 최고 선도국의 평균 점수인 4.5점과 비교해 격차가 큽니다.
 
선도국들은 오랜 기간 기술경쟁력을 축적하며 공급망 재편에 대응한 반면, 한국은 여전히 기술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이상원 산업연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부연구위원은 "정부는 공급망 안정화 정책·핵심산업 미래 전략을 추진 중이나 특정 스페셜티(고기능성) 소재는 여전히 높은 해외 의존도를 보이고 있어 경쟁력 강화를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지난해 10월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12회 '국제첨단소재기술대전'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소·중견 디지털 투자 '난제'
 
선도국에 비해 낮은 경쟁력은 디지털 전환 분야(우리나라 2.75, 선도국 4.5점)에서도 나타납니다. 결국 글로벌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유럽·미국의 글로벌 화학기업들은 이미 디지털 전환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 중소·중견기업의 디지털 전환 속도가 매우 더디다는 평가입니다.
 
정밀화학산업에서 디지털 전환은 필수 과제이나 높은 투자 비용이 수반돼 중소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등 첨단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생산공정 혁신이 가능해졌지만, 초기 투자·운영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수요기업들은 맞춤형 제품, 빠른 납기, 높은 제품 안정성을 요구하고 있어 유연한 생산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나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신 투자 영역'…정책적 뒷받침 절실
 
그린 전환 경쟁력 점수도 선도국 평균인 4.25보다 낮은 3.25점에 그치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과 기업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환경규제가 정밀화학업계로서는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생산설비 개선, 친환경 원료 사용과 에너지 효율 향상, 엄격한 안전 기준 등의 필수적 부담이 꼽힙니다.
 
그럼에도 정밀화학산업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바이오 기반 소재, 재생 가능한 자원 기반 소재 등 친환경 제품 개발은 신성장동력으로 꼽힙니다. 폐플라스틱·폐배터리 재활용 등 순환경제 구현을 위한 소재 개발도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한국 2.5점, 선도국 3.25점으로 평가된 인구구조 변화 대응 경쟁력 점수와 관련해서도 "인구가 줄어들면서 자동차, 건축자재, 생활소비재 등의 소비가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후방산업인 정밀화학 제품의 수요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반면 고령화에 따라 건강 기능 식품·의료용 소재 시장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또 인공혈관 등 첨단 고기능 의료기기 소재 개발이 새로운 투자 영역"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부연구위원은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효과적인 정부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며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핵심 품목의 국산화, 고부가·친환경 제품 관련 법·제도 개선, 중소기업의 디지털·그린 인프라 확충 등의 정책적 뒷받침이 요구된다. 글로벌 신흥시장 진출을 모색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는 전략적 노력도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12일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21~2030년 기간 정밀화학산업은 연평균 4% 성장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출처=산업연구원)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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