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한국 정부의 불참속에 '사도광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본이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에 상설 전시를 하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1500명인 것과 노동환경이 가혹했다는 점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적으로 수용했다." (<요미우리신문>)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가 '윤석열 취임 이후 양국 관계가 급속히 개선됐고 윤석열정권이 아니면 합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니가타현 최대 일간지 <니가타일보>)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일 언론 "윤석열정권 아니면 못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1500여명이 강제노동을 당 일본 니카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가 한·일 관계 최대 현안이었던 지난해 7월 일본 언론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보도했습니다.
당시 윤석열정부는 <요미우리신문> 보도를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으나, 그 뒤 사도광산 등재 문제에 대한 한·일 간 논의 과정을 묻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 질의에 외교부는 "사도광산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쪽에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공식 답변했습니다. 결국 보도가 맞았던 것입니다.
3년을 채 못 채운 '1060일' 집권 기간 동안 윤석열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최대 업적으로 내세웠지만, "윤석열정권이 아니면 합의할 수 없었다"는 <니가타일보> 기사처럼 '일본에 아낌없이 주는 외교'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2023년 3월에 윤석열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드라이브를 처음 시작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제3자 대위 변제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채권자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책임을 져야 할 일본 정부는 어디 가고 왜 한국 정부 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재단(재단)이 나서는 것이냐"고 반대했고, 일본 가해기업들은 불법행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인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인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됐습니다.
'제3자 변제' 관련 민법 제469조 조항(①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이해관계 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이 분명했기 때문에, 재단이 낸 12건 공탁 전부가 법원에서 기각되기도 했습니다. 또 기금 출연을 기대했던 일본 기업 참여는 전무했고, 포스코를 제외한 국내 기업들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심규선 재단 이사장이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2024년 5월)이라고 토로하는 상황입니다.
지난 2023년 3월 16일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친교 만찬을 마치고 도쿄 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처럼 '한·일 관계 개선' 정책은 물론 윤석열정부에 대한 한국 내 지지 자체가 약해 이미 일본 측에서는 지속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지난 4일 한국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파면'을 결정한 뒤, 일본 언론은 대체로 윤석열정부의 퇴진을 안타까워하면서 한국 차기 정권 향배에 따른 한·일 관계 변화를 전망했습니다.
일본 공영 <NHK> 방송은 윤씨를 언급, "전후 최악이었던 한·일 관계 개선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며 "가장 큰 현안 중 하나인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극우 성향 매체로 꼽히는 <산케이신문>은 이날 윤씨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한 만큼 일본 정계에서는 여야를 넘어 그의 임기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전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을 서둘렀던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위해 진보와 보수 진영을 막론하고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강경한 대일 외교는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독주하고 있다"며 "만약 정권이 교체된다면 문재인정권 시절처럼 반일 노선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 신문은 6일에는 "붉고 어두운 '지옥의 나라'를 향해 한국이 확실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막말'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 아래 "대통령이 좌익, 국회의석의 3분의 2도 좌익이나 좌파가 되면 사회주의화는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며 "재벌은 흔들리고, '일본보다 부유한 나라'라는 도금은 급속히 벗겨질 것"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일본 최대 <요미우리신문> 사설에…"안정된 일·한 관계 유지"
일본 최대 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5일 사설에서 "한국의 혼란이 길어지면서 일한, 일·미의 연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대선에서는 반일 발언을 해온 좌파계 제1야당 이재명 대표가 지지율에서 독주하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그러면서 "안정된 일·한 관계 유지를 주시하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신문은 또 총리 관저 관계자가 "(윤석열정부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는데, 파면에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사설에서 "한국 대통령 교체로 일본에는 한국과 또다시 불편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한국 정치인들이 일·한 관계 정상화라는 큰 흐름을 견지할 것을 바란다"고 주문했습니다.
올해 2025년은 광복 80주년이자,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한·일 협정 60주년(6월 22일)인데요. 정부가 오는 6월 3일을 대선일로 확정했다는 점에서 한국 차기 대통령은 취임 하자마자 바로 일본 관련 대형 이벤트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4일 '윤석열 파면' 결정 직후 중의원(하원) 내각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관련 질문에 "일·한 협력은 안보 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평화, 지역 평화·안정에 극히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며 "향후 한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올해는 일한 국교 회복 60주년"이라고 답했습니다. 6월 3일 한국 대선에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경우 윤석열정부의 대일정책을 대폭 수정하게 될 것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