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초대형 증권사 간 전산운용비 격차가 뚜렷하게 벌어졌습니다. 디지털 전환과 비대면 거래 확산 속에서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800억∼1000억원대의 돈을 투입한 반면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상대적으로 적은 500억원대 이하 투자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15일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006800),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005940), KB증권,
삼성증권(016360) 등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투자은행(IB)인 이른바 '빅5 증권사'의 전산운용비 총액은 2020년 2035억원에서 2024년 4078억원으로 2배 이상(100.4%)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전산운용비에는 주식거래시스템(MTS·HTS) 구축·운영과 유지보수, 서버 및 보안 인프라 확충, 외주 기반의 신규 기능 개발 비용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증권사들의 오프라인 점포는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 줄어든 점포 대신 증권사들이 MTS 등 디지털 채널을 강화하는 데 자금을 투입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63개 증권사의 지점 수는 총 700곳으로 1년 전 755곳 대비 7.3%(55곳)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빅5 증권사의 지점 수 역시 288곳에서 269곳으로 줄었습니다.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800억∼1000억원대 돈을 전산비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증권의 전산비는 2020년 360억원에서 2024년 1055억원으로 약 3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삼성증권은 그룹 차원의 통합 앱 '모니모' 비용을 분담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2021년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이후 지속적인 확대 기조를 유지하며 업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2020년 259억원에서 2024년 897억원으로 3.5배 이상 늘렸습니다.
반면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이보다 적은 300억~400억원대 투자에 그쳤습니다. NH투자증권은 2020년 296억원에서 2024년 377억원으로 늘었지만, 5년간 줄곧 300억원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투자 규모는 일정하게 유지됐지만, 다른 증권사들에 비해 증가폭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타사의 경우 대부분 자회사를 통한 아웃소싱 형태로 진행돼 IT부문 비용 규모가 크게 잡힌다"면서 "자체 인력에 따른 개발 비중이 높아 규모가 적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타사와 달리 정보이용료(전년 기준 232억원)가 전산운용비로 분류되지 않고 일반 비용예산으로 관리되고 있어 이에 따른 차이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2년에 990억원까지 늘렸다가 이후 400억원대로 정체돼 있습니다. 매출과 이익 규모에선 업계 선두권이지만 전산 구축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7년간 총 9건의 전산장애로 약 65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했습니다. 이는 업계 최고 수준입니다. 특히 MTS·HTS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발생해 인프라 투자 부족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전산운용비는 회계상 하나의 개정으로 분류된 항목일 뿐이며 실질적인 전산 운영 범위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외주를 통한 개발 계약은 변상관리비로 처리되기도 하고, 내부 개발의 경우 일부는 설비비, 일부는 인건비로 나뉘기 때문에 단일 항목만으로 전산 투자 전체를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계에서는 MTS가 고객을 모으는 주요한 플랫폼인 만큼 전산 개발에 증권사의 생존이 걸려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전산비 증가는 주로 시스템 용량과 역량을 꾸준히 확장하고 차세대 전산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서비스 품질 향상과 규제 대응이 주된 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MTS가 이제는 고객 유입과 이탈을 결정짓는 플랫폼이 된 만큼 전산투자 규모는 단순 비용이 아닌 생존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