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은행 대출금리의 향방에 금융소비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시장금리를 지표로 삼는 기준금리에 은행이 더한 가산금리로 구성됩니다.
앞서 한은이 세 차례 기준금리를 내렸는데도 대출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금융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졌는데요. 최근 코픽스(COFIX) 등 시장금리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대출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지만, 이번 금리 동결 결정에 따라 실제 하락폭이 제한되며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준금리 인하사이클 속 대출금리 하락 '글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7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7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2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한 이후 처음으로 동결한 것으로, 환율 불안과 가계부채 증가, 미국 기준금리 인하 불확실성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올해 1월 동결 후 2월 다시 인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일부에선 내수 부진 심각성을 고려해 금리 추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금통위는 신중론에 무게를 뒀습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는 인하 사이클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에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선반영되면서 은행권 주담대 금리 선정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는 최근 3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채 5년물(무보증·AAA) 금리는 지난 16일 기준 2.765%입니다. 지난 2022년 3월 18일(2.750%) 이후 3년 만에 최저치 수준입니다.
다만 실제 대출금리 하락 효과는 제한적일 전망이며 예금금리는 더 큰 폭으로 하락할 전망입니다. 이번엔 동결이지만 추가 인하 기대감에 따라 시장금리는 반응하기 때문에 예금금리 하락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지난해 7월 평균 3.862%에서 지난 2월 4.338%로 0.476%p 상승했습니다. 한은이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대출금리는 오히려 상승한 겁니다.
대출금리가 도리어 상승한 이유는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세를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국은 원칙적으로 대출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긴 하지만 금리 인하가 가계대출 급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도 지난 9일 가계부채 점검 회의에서 “금리 인하 기대감 속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가계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책금융 상품을 제외한 은행 자체 대출 규모는 줄었고 기업대출도 부진한 상황"이라면서 "시장금리는 하락하지만 당국 방침에 따라 가산금리를 조정해 대출금리를 유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고객들이 창구 업무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코픽스 하락세, 금리 인하 효과 제한적
은행들이 예대마진 확보를 위해 높은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시장금리 지표로 작용하는 코픽스는 6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3월 기준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2.84%로 전월 대비 0.13%p 하락했고, 잔액 기준 코픽스도 3.36%에서 3.30%로 떨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은행채 5년물 금리는 2.765%까지 하락해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금리 하락 흐름이 실제 대출금리 인하로 이어지진 않고 있습니다. 5대 시중은행의 평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지난달 기준 4.38%로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지난해 3월 3.98%보다 오히려 상승한 수치로 기준금리 인하가 소비자 대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이는 가산금리 인상과 우대금리 축소 때문입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부터 고정금리 판매 비중을 높이기 위한 행정지도를 시행하면서 현재 은행권은 변동금리 상품 가산금리 조정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5대 은행의 가산금리는 지난 2월 기준 3.008%로 전년 동기 2.754%에서 높아졌고 같은 기간 우대금리는 2.636%에서 1.605%로 줄었습니다. 결국 금융소비자가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대출금리 인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인 셈입니다.
이 같은 흐름은 오히려 은행 수익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준금리가 인하되면 예대마진이 줄어들 수 있지만, 현재처럼 대출금리 하락 폭이 작고 예금금리는 꾸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순이자마진(NIM) 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올해 1분기에도 국내 4대 금융지주는 총 5조원에 가까운 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기준금리는 낮아졌지만 예대금리차 확대와 코픽스 하락에 따른 자금 조달 비용 절감이 수익성 개선에 기여한 것입니다.
결국 기준금리 동결과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 속에서 차주들의 부담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환율 등 외부 변수 영향이 더 크다"며 "은행들은 이미 일정한 금리 시나리오를 가정해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동결로 인한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