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봄은 왔는가

입력 : 2025-04-18 오전 6:00:00
‘예언의 나팔 소리를 외치라.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영국의 낭만파 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 일부다. 이 시구는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 속에서도 자주 인용되어왔다.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서, 혹은 광장의 촛불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다음 계절’을 희망했다. 그렇다면, 윤석열정부 이후 우리 정치에는 과연 봄이 왔을까?
 
정치적 봄은 표면적으로 정권이 바뀌거나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형식적 민주주의 수준의 변화를 넘어 내용적 민주주의 수준까지 변해야 비로소 정치의 봄은 왔다고 정의내릴 수 있다. 무엇보다 공론의 장이 넓어지고 권력이 대화로 설득되며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존중받고 시민의 정치적 상상력이 움트는 상태를 말한다. 시민과 정치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계절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정치적 갈등, 언론과의 대립, 검찰 중심 국정 운영 방식을 고수했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통제와 대결의 길이었다. 특히 야당 지도자를 정치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먼지털이식 수사와 기소를 조장하고 방조했다. 그의 선택은 성공할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지난 총선을 통해 처절한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판결에서도 언급했듯이 총선 참패 이후에도 윤 전 대통령에겐 기회가 없지 않았다. 야당과 정치적 반대자의 뜻을 대폭 수용하고 통합적 정치를 펼쳐 나갔다면 아마 모든 일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 순간 정치적 해결이 아닌 폭력적 해결, 즉 비상계엄을 통한 정치 말살과 독재의 길을 선택했다. 그 후과는 탄핵과 사법 심판으로 이어졌고 곧 조기 대선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을 예정하고 있다.
 
이 변화가 진정한 봄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진보도 보수도 ‘대안의 언어’를 말하고 있지만,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킬 청사진은 부족해 보인다. 마치 얼어붙은 논에 비료만 뿌리고 모종은 심지 않은 상태와 같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 전반에 걸쳐 ‘정쟁은 있으되 비전은 없는’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구체적 상상은 빈약하다.
 
그래도 몇 가지 긍정적 움직임은 있다. 첫째, 시민사회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계엄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끌어낸 시민의 힘이 앞으로 정치를 바꾸고 사회를 혁신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자발적 정책 감시 플랫폼, 지역 커뮤니티의 정치 모임, 독립 언론의 성장 등으로 맹아가 돋아나고 있다. 둘째, 키세스단으로 상징되는 2030의 정치 참여와 각성은 앞으로 우리나라를 몇 십년간 희망적으로 변화시킬 마중물이 될 것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혐오’가 아닌 ‘재구성’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직 우리 정치에 봄이 왔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겨울이 끝났다는 징후들은 분명히 보인다. 봄은 벚꽃이 아니라 흙냄새로 온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우리 정치도 마찬가지다. 번지르르한 수사보다 중요한 것은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삶의 온기와 질문들이다. 결국 정치의 봄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으로 상징되는 리더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손으로 만들고 가꾸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문턱에 서 있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흙 속에서 봄은 꿈틀거리고 있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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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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