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빠따' 한번 맞으려 했지만

나의 송사 이야기-두 번째
국회의장과 소송한 뒷얘기

입력 : 2025-06-05 오후 7:38:18
[뉴스토마토 오승훈 산업1부장] “선배, 정세균 의장실에서 의장실 방문해서 사과하면 소송 취하한다는데... 미친 거 아니예요?”
 
의장실가서 빠따 한 번 맞고 소송 취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던 찰나, 후배의 '미친 거 아니냐'는 말에 나도 모르게 답했다.
 
“(…) 진짜 미쳤네. 그럴 수야 없지.”
 
힘 센 인간들을 속칭 조지는 기사로 이미 여러차례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본 터라 왠만하면 송사를 피하고 싶던 차였다. 하지만 후배의 이 말에 난 다시 '참기자'로 거듭났다.
 
지난 2016년 2월, 수원대학교 이인수 전 총장이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 첫 공판을 위해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이인수 전 수원대 총장의 증인채택을 막기 위해 자신이 동료 의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2014년 11월과 2016년 2월 보도하자, 2016년 7월 국회의장 신분으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소송을 당시 내가 속했던 언론사와 취재기자들에게 제기했다. 국회의장이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1심 선고 결과는 2019년 7월에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재판장 이동욱)는 정 전 의장이 “허위보도를 통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나와 언론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정 전 의장이 허위라고 주장한 당시 보도를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정 전 의장)가 2013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당시 국회 교육문화위 소속인 같은 당의) 안민석 의원에게 전화하여 ‘이인수 쪽 입장을 들어봐 달라’고 청탁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설령 원고(정세균)가 안민석에게 증인채택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안민석과 원고의 관계, 원고의 지위 등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행위는 압력행사로 비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해당 기사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기사는 다선 국회의원이자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던 유명 정치인인 원고의 의정활동 관련 의혹에 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며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100억원대 사학비리에 연루돼 여러 차례 재판을 받은 이 전 총장은 정 전 의장과 고려대 71학번 동창으로 알려져 있다. 3년 동안 이어진 소송 과정에서 정 전 의장 쪽은 앞서 밝혔듯 여러 경로를 통해 나와 언론사가 사과의 뜻을 밝히면 소를 취하하겠다는 뜻을 전해 오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이인수 전 수원대 총장 비호 의혹을 보도한 2016년 2월27일치 <한겨레> 1면. 정 전 의장은 국회의장 취임 직후인 2016년 7월 한겨레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회장의 사돈이기도 한 이인수 전 총장은,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더불어 국정감사 증인 채택이 최종 불발된 몇 안 되는 권력자였다. 그의 증인 채택 불발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입김도 작용했다고 당시 나는 썼다. 여야 유력 정치인을 친구로 두고, 전현직 검사장들을 호위무사로 부리는, 조선일보 사주의 사돈은 기자의 전화와 문자에 당최 답이 없었다. 
 
현재 대학 교비 횡령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이 전 총장은 지난해 6월 항소심에선 형량이 더 가중되기도 했다. 수원지법 제4형사항소부(부장판사 이정엽)는 업무상 횡령·배임,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전 총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학교 시설 입점 업체들이 제안하는 임대료 중 일부를 피고인이 대표자로 있는 재단에 기부하도록 하거나 학교 법인 의 일반 기부금으로 기부하도록 해 세입과 세출이 엄격하게 특정돼 있는 교비 회계 재정의 건전성을 해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이는 수원대 총장이란 피고인 지위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 또한 저버린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피해 금액도 상당하단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전 총장은 수원대 총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2~17년 대학자금으로 개인 소송 변호사비와 수원대 설립자 추도 비용, 미국 외유(外遊) 항공료, 연예계 후원비 경조사비 등으로 유용하는 등 총 3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총장직을 떠난 뒤엔 수원대와 계약을 맺고 입점한 유명 자판기업체와 서점의 임대료를 낮게 책정하고 학교법인 고운학원·고운문화재단 등을 통해 기부금 3억 7500여만 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전 야당 대표에 대한 재판은 속전속결인 대한민국 법원이, '사학비리계의 끝판왕'에 대한 재판은 9년 째 진행하고 있다. 
 
한편, 현직 국회의장과 기자의 송사로 회자됐던 위 소송은 정 전 의장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싱겁게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오승훈 산업1부장 grantorin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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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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