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이재명정부의 청사진을 설계하는 국정기획위원회가 19일 정부 부처의 업무보고에 대해 "매우 실망"이라며 공개적으로 질책했습니다. 이틀 연속 정부 부처들을 질타한 것인데요. 공직사회가 윤석열정부에서 일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이재명정부의 국정 방향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국정기획위가 활동 초반부터 강하게 기강잡기에 나서는 모양새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윤석열정부 내란"까지 거론…공직기강 해이 '질타'
조승래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이날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브리핑을 통해 "업무보고는 한마디로 '매우 실망'"이라며 "공약에 대한 분석도 부족하고 내용이 없고 구태의연한 과제를 나열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조 대변인은 또 "새로운 정부에 맞는 구체적인 비전이나 계획을 세우지 못했고, 어떤 부처는 공약을 빙자해서 부처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제시하는 상황도 벌어졌다"며 "윤석열정부 3년, 비상계엄과 내란 6개월간 공직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무너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비상계엄 이후 현재까지 맥 빠진 공직사회의 기강 문제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당장 20일까지로 예정된 업무보고는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새 정부의 공약 등을 반영해 전 부처의 업무보고를 다시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조 대변인은 "오늘과 내일 진행되는 업무보고는 예정대로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전 부처 보고를 다시 받는 수준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도 연일 쓴소리를 하며 기강잡기에 나섰습니다. 이 위원장은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 "지난 3년간 이완돼 있던 정부 정책과 지난 겨울부터 이번 대선에 이르기까지 이 기간 동안 많은 부분들이 흐트러져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계획을 꼼꼼히 세워 한다"며 "공약을 잘 반영했으리라 믿지만 혹시라도 부족했다면 서슴없이 새로 작성하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이 위원장은 전날 첫 업무보고를 마친 뒤에도 부처 기강잡기에 나선 바 있습니다. 그는 전날 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를 받기 전 모두발언에서 "지난 2017년 업무보고에 비해 공약에 대한 이해도와 충실도가 떨어진다"며 질책했습니다. 이 위원장은 문재인정부 초반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그는 "시간도 비슷했고 상황도 비슷한데 그럼에도 공약과 관련된 업무 보고 내용이 덜 충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같은 날 경제1분과장을 맡은 정태호 민주당 의원도 기재부 업무보고를 마무리하면서 "기재부가 기존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갖고, 다양한 접근 방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됐길 바란다"며 우회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이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제2분과 산업통상자원부 업무보고에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조직개편 시그널 해석…향후 고강도 개혁 '불가피'
정치권에선 국정기획위 인사들의 기강잡기를 놓고 향후 정부 조직 개편을 위한 '시그널'로 바라보는 분위기입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조직 개편과 관련한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는 데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이른바 군기잡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다만 조 대변인은 "거취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일을 안 한다는 것은 국민 세금으로 녹봉을 받는 분들이 태업한다는 얘기"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국정기획위 기획분과의 한 위원은 최근 잇단 질책성 발언들이 나오는 데 대해 "원래 공직자들은 양 진영의 공약들을 미리 분석해서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준비했어야 했는데 (부처의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 때문에 이렇게 미적거리는 것 아닌가"라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국정기획위가 업무보고 초반부터 공직사회의 기강을 잡는 데 나섬에 따라 정부 조직 개편 이후 고강도 개혁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전날부터 나온 주요 개혁 과제와 관련해 국정기획위는 여성가족부의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실행 조직으로 지목된 국군방첩사령부의 개혁, 준 4군 체제 공약 이행계획의 일환으로 해병대사령관 4성 장군 진출 등에 대한 검토에 나섰습니다.
이한주 위원장은 이날 오전 산업부 업무보고에서 "이제는 모방이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치열한 과학기술 경쟁 속에서 어떤 한이 있더라도 선진국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오후에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선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임금격차 해소를 정부 노동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의 필요성을 피력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