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김태은 기자] 미국의 이란 핵 시설 타격에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맞대응에 나서면서 한국 경제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궁지에 몰린 이란이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사상 처음으로 봉쇄할 경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타격은 불가피합니다. 과거 1·2차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을 경험한 한국 경제가 긴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동발 위기를 바라보는 정부는 복잡한 심정입니다. 새 정부 출범 후 30조5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긴급 투입하며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려던 찰나에 뜻밖의 대외 변수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가뜩이나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대 저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중동발 리스크는 추경을 통한 경기 부양 효과도 상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부는 커지는 경기 하방 압력을 예의주시하며 긴급 대비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세계 경제 블랙홀로 떠오른 '호르무즈 해협'
22일(현지시간) 이란 의회는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습니다. 미국이 자국 핵 시설을 폭격하자 대응 차원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최종 결정은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가 내리지만, 실제 봉쇄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의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좁은 바닷길입니다. 이 바닷길은 대부분 이란 영해로, 이란이 군함으로 막거나 검문검색을 강화하면 봉쇄됩니다. 문제는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5%, 액화천연가스(LNG) 소비량의 약 20%가 이곳을 통과한다는 점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이 이곳을 통해 아시아권으로 석유를 수출합니다.
한국 역시 수입 원유의 약 68%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 주요 산유국의 생산 시설이 모두 페르시아만 인근에 있어 한국으로 오는 중동산 원유는 99%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칩니다.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한국 경제의 타격은 불가피합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현재 70달러 선까지 급등한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최악의 경우 유가는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의 보복을 유발하며 중동 전역의 원유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치솟는 유가·뛰는 환율·꿈틀대는 물가…한국 경제 '빨간불'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계속 오를 경우,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유가 상승은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전반적인 수입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이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과거 1·2차 오일쇼크 때도 국제유가 급등은 고물가 쇼크를 불러왔고, 각각 5%포인트 이상 성장률을 깎아내리며 한국 경제를 강타한 바 있습니다.
지정학적 불안은 국내 금융시장의 충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글로벌 정세 불안이 확대되면 안전자산 선호가 강해지면서 달러 가치가 오르고, 이는 원화 약세로 이어져 수입 비용을 더욱 끌어올립니다. 이로 인해 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되며 기업과 소비자 모두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실제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중동발 위기 고조에 전 거래일보다 18.7원이나 오른 1384.3원에 장을 마감했습니다. 중동 지역의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중동 지역의 불안정은 공급망 차질과 수출 여건 악화로 이어지면서 국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중동이 한국의 주요 수출 지역은 아니지만, 글로벌 공급망 불안 확대에 따른 교역 위축 등 간접적인 영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한다면 글로벌 해운 운임이 상승해 국내 수출 기업들의 물류 비용 부담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됩니다.
이 같은 이유로 정부는 중동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며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입니다. 특히나 2차 추경으로 경기를 진작하려던 정부 계획도 경기 하방 압력이 확대되면서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가뜩이나 위축된 민간 소비, 투자 등은 더욱 침체될 가능성이 있어 0.1%포인트라도 성장률을 높이려는 정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은 전날에 이어 이날에도 '중동 사태 관련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열고 "미국의 공습 이후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하는 등 향후 사태 전개의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평가하면서 "각별한 경계심을 갖고 국제에너지 가격 및 수급 상황을 밀착 점검·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거나 본격적인 전쟁 국면으로 넘어간다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한국은행 전망치인 0.8%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도 봉쇄된다면 수입은 물론, 중동 수출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어 "아직 호르무즈 해협 봉쇄 전이라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형일 기획재정부 장관 직무대행 1차관이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동사태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박진아·김태은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