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태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가별로 부과한 상호관세가 7일 0시1분(미 동부시간 기준)부터 본격 발효됩니다. 자유무역 체제를 지향해온 기존 세계 무역 질서가 흔들릴 것으로 보입니다. 또 상호관세 시행 이후에도 후속 협상과 품목별 관세 부과가 예정된 만큼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끝 아닌 시작'…반도체·의약품 품목관세 예고
6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당초 25%인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일본·유럽연합(EU) 등과 동일한 수준이며, 10%는 현재 '기본관세'라는 이름으로 부과 중입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서 0% 관세를 적용받던 자동차의 경우 15%가 부과됐습니다. 일본·유럽연합(EU)와 동일한 수준이지만, 이전 대우를 생각하면 한국이 더 큰 부담을 진 셈입니다. 한국은 FTA 체결국으로서 자동차 관세 0% 대상이었지만, 일본·EU는 2.5% 관세를 부과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부는 관세율 인하를 위해 3500억달러(약 487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약속했습니다. 이 중 2000억달러는 미 측이 반도체·원전·이차전지 등 첨단산업에 투자하고,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 펀드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여기에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도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상호관세 발효로 '관세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에도 반도체 관련 품목 관세를 "다음 주 내로" 발표하겠다고 했습니다. 의약품의 경우 초기 단계에서는 '약간의 관세'를 부과하지만, 1년이나 최대 1년 반 뒤에는 150%, 이후에는 250%까지 올리겠다는 방침도 밝혔습니다.
관세 협상 이후 한·미 간 입장이 엇갈리는 부분도 노출돼 '후속 협상'의 중요도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 여부입니다. 우리 정부는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수입 개방 확대는 막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한국이 농산물, 자동차 등 시장을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3500억달러에 달하는 펀드 조성 역시 구체적인 수익 배분 구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 투자에 따른 이익의 90%는 미국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적었습니다. 반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수익이 미국에 재투자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호관세 부과로 한국의 전반적 대미 교역량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중 수출 의존도를 줄이면서 수출선 다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세계무역기구(WTO)로 대표되는 다자주의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이라고 바라봤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2일(현지시간)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라는 행사를 열고 국가별 상호관세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날아오는 안보 청구서…브릭스, 관세 외교전 지속
앞으로 관세 협상에 포함되지 않은 '안보' 의제에 관한 미국의 압박이 본격화할 조짐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도 다른 동맹국과 마찬가지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수준의 국방비 지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해 한국 국방예산은 61조2469억원으로 GDP의 2.32%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한미군 역할 조정 등을 포함한 '동맹 현대화'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최근 미국은 북한 대응에 집중했던 주한미군의 역할을 인도·태평양 차원의 대중국 견제로 확대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미 동맹 공고화와 한·중 관계의 균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고도의 외교적 조율이 필요한 난제입니다.
한편, 미국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등 일부 국가들과는 여전히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중국과는 지난달 말 고위급 협상에서 '관세 휴전'을 90일간 연장하기로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승인을 미루고 있습니다. 양국은 오는 11일 관세 휴전 기한 종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브라질에는 10% 상호관세에 40%의 별도 관세 부과로 인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50% 관세 부과가 예고된 상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그 이유입니다.
러시아에는 우크라이나전 종전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관세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휴전 시한을 '50일 이내'에서 '10일 내'로 단축해 오는 8일까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러시아는 물론 러시아와 거래하는 국가에 대해 2차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인도에는 25% 관세 부과를 통보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이유로 인도에 대한 관세를 "상당히 올릴 것"이라고 압박한 바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미국과 관세 협상이 타결에 이르지 못해 상호관세율 30% 부과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