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공군사관학교 212비행교육대대를 방문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 설립 주역 후손들이 국산 훈련기 KT-100 좌석에 앉아 학생조종사로부터 항공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공군)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아시나요? 생소하지만 신흥무관학교와 함께 우리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군사교육기관입니다. 비행학교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공군의 출발점입니다.
공식 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입니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 카운티에 있는 소도시 윌로우스에 일본과의 독립전쟁에 투입할 조종사를 길러내기 위해 설립된 교육기관입니다. 1919년 9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노백린 장군이 주도해 독립 염원을 가진 미주 한인 사회 지도자들의 의지를 모아 설립됐습니다.
1920년 노 장군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미국 비행학교에 재학 중인 한인 청년들과 윌로우스 일대에서 대규모 쌀농장을 운영하던 김종림, 이재수 등을 만나 임시정부 예하의 군단 창설을 논의하며 한인 비행사를 양성할 비행학교의 설립을 결의합니다.
'쌀의 왕'으로 불리던 사업가 김종림의 지원으로 40에이커(1200여평)의 땅에 학교 건물을 마련하고 1920년 2월 말 비행학교를 임시 개교했습니다. 3대의 J-1 항공기와 비행 교관들을 채용 한 후 박희성, 이용근 등을 생도로 받았습니다. J-1은 당시 최신예 기종으로 기체에는 'Korea Aero Club'의 줄임말인 'K.A.C'를 새겼습니다. 그해 7월5일 공식 개교한 비행학교는 전문적인 비행훈련뿐만 아니라 무선통신, 비행기수선학(정비학), 영어교육, 민족교육 등을 통해 독립의식과 지성을 갖춘 한인 비행사를 양성하는 데 박차를 가했습니다. 20여명의 생도들은 훈련 경비를 스스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노동과 군사훈련을 병행했습니다.
당시 노 장군이 이동휘 임시정부 국무총리에게 보낸 서신에는 "향후 10대의 비행기를 구입해 독립전쟁에 활용할 비행대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고, 비행학교가 윌로우스 교육청에 보고한 문서에는 학생 규모를 100여명으로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비행학교는 1920년 말 기록적인 폭우로 한인 농장들이 직격탄을 맞자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고 1921년 4월 끝내 문을 닫게 됩니다. 이에 일부 교관과 학생들은 다른 비행학교로 옮겨 비행훈련을 지속했습니다. 그 중 새크라멘토 비행학교에서 훈련을 이어간 박희성과 이용근은 1921년 7월 국제항공연맹 비행사 면장을 받았고, 임시정부는 이들을 육군비행병 참위(오늘날의 소위)로 임명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장교가 탄생했습니다.
비행학교를 통해 일제와 싸우기 위한 항공기 조종사를 양성하겠다는 임시정부의 의지와 '동경에 날아가 쑥대밭을 만들자'고 했던 비행학교 주역들의 결의는 현실화되지 못했지만, 여러 방면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그들의 신념과 열정은 오늘 우리 공군에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2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후손들이 선조들의 묘역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군)
우리 공군의 출발점이 된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던 주역의 후손들이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지난 12일 고국을 방문했습니다.
비행학교 설립을 주도했던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 비행학교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김종림 지사, 비행학교의 재무와 운영을 맡았던 이재수 지사, 한인 비행사 오임하, 이용선, 이초, 장병훈, 한장호, 박희성 지사 등 9인의 항공독립운동가 후손과 가족 20여명입니다.
이들과 함께 미주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 내 설립된 비영리 단체 '길(KIL·Korean Independence Legacy)' 관계자 10여명도 방한했습니다.
공군과 국가보훈부가 공식 초청한 것으로 이들은 오는 16일까지 공군사관학교와 제1전투비행단의 비행교육 과정 등을 견학하며 공군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보게 됩니다.
이들은 방한 첫날인 12일 선조들이 안장돼 있는 대전현충원 참배로 공식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공군 정예장교를 양성하는 공군사관학교를 찾아 교육·훈련 체계에 대해 설명을 듣고, 교내 시설들을 둘러봤습니다.
후손들은 학생 조종사들이 비행훈련을 받고 있는 212비행교육대대도 찾아 학생 조종사들을 격려하고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13일에는 공군의 고등비행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광주 공군1전투비행단에서 부대 현황을 소개받고, 학생 조종사들과 간담회를 갖습니다.
1전투비행단은 공군 최초의 비행단으로, 6·25전쟁 시 승호리 철교 차단작전 등의 혁혁한 전과를 세웠던 부대입니다. 지금은 국산 초음속 훈련기인 T-50과 전술 입문 훈련기인 TA-50 블록2를 운용하며 정예 전투조종사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광복절인 15일 오전엔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잠실야구장에서 펼쳐지는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시타도 합니다.
마지막 날인 16일는 국립항공박물관, 임진각 평화누리 등을 견학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 설립 주역 후손들이 12일 공군사관학교를 방문해 차준선 공군사관학교장으로부터 '제1기 졸업생 첫 출격 서명문 태극기' 기념품을 전달받고 있다. (사진=공군)
박희성 지사의 조카손녀 임인자(69)씨는 "해외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발전상과 활약상을 접할 때마다 기쁨과 긍지를 느꼈는데, 공군의 공식 초청으로 공군사관학교, 전투비행단의 면면을 직접 보고 들으니 더욱 감개무량하다"며 "100여년 전 임시정부 비행장교로 임명됐던 백조부께서 이 모습들을 보신다면 얼마나 뿌듯해하실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김권희(대령) 공군본부 정훈실장은 "항공력을 키워 조국 광복을 위해 싸우겠다며 분투했던 임시정부 비행학교 항공 선각자들의 정신은 지금도 대한민국 공군 장병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며 "그분들의 후손들에게 오늘날 대한민국 공군의 발전된 모습과 강력한 위용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